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어, 첫 만남은 침대에서…슬슬 선 넘는 연애예능 [MD포커스]

마이데일리
'스탠바이미' / 웨이브

[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채널을 돌리고 플랫폼을 켤 때마다 새로운 선남선녀들이 엇갈린 화살표를 던지며 눈물을 흘린다. 6월 한 달 동안 베일을 벗는 새 연애 예능만 무려 네 편이 넘어서는 상황. 시장이 이토록 과포화되다 보니 방송사들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들은 이제 평범한 설렘이나 평범한 로맨스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후발 주자들이 선택한 생존 방식은 단 하나, 바로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자극성의 극대화’다. 대중의 도파민 버튼을 쥐어짜기 위해 급기야 성별의 경계를 허물고 가장 사적인 공간까지 카메라 앞으로 끌어들이는 사상 초유의 '매운맛' 실험들이 안방극장을 공습하고 있다.

공개 예정인 신작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과연 이것이 지상파와 OTT에서 정식으로 유통되어도 괜찮은 수준인가에 대한 의문이 먼저 든다. 오는 19일 공개를 확정 지은 웨이브(Wavve)의 새 오리지널 예능 ‘스탠바이미’는 성별의 조건을 뛰어넘는 연애를 표방한다. 출연진들은 “어떤 성별을 기대하셨죠?”, “열어두자, 그러려고 나온 거잖아”라며 남성과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이성애 구도를 가볍게 무시한다. 오직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성에 경계를 두지 않겠다는 이 기획은, 연애 예능의 블루오션을 개척하겠다는 명분 뒤에 양성애(바이섹슈얼)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가십거리로 소비하겠다는 자극적 속내가 투영되어 있다.

'연애실험실' /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선보이는 이진주 PD의 신작 '연애실험실'(17일 공개)은 시각적 자극의 정점을 찍는다. 1회 예고편에서 공개된 이 프로그램의 첫 만남 장소는 다름 아닌 ‘침대 위’다. 난생처음 마주한 이성이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인 침대에 누워 소개팅을 진행하는 파격적인 설정에 참가자들조차 “이게 말이 되나?”라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침대'라는 공간이 주는 성적 뉘앙스와 자극적인 플러팅을 앞세워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으려는 상술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극의 형태는 공간과 성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독설과 현실적인 조건의 노골적인 상품화 역시 선을 넘고 있다. 오는 23일 첫 방송되는 JTBC ‘연애전쟁’은 이별 직전 커플들의 피 튀기는 싸움을 중계한다. 이효리, 서장훈, 김희철 등 주류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워 “대실 2시간”, “화장실 문을 투명으로 바꿔라”와 같은 고수위 입담과 거침없는 돌직구를 쏟아낸다고.

25일 방송되는 SBS ‘합숙맞선’은 한술 더 떠 부모와 가족들까지 맞선 판에 등판시킨다. “나는 어리고 예쁘고 돈도 잘 번다”라며 당당하게 스펙을 무기로 내세우는 출연진과, 자식의 조건을 앞세워 “바로 결혼식장 가야 하나”라며 돌직구 플러팅을 날리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사교의 장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인적 시장의 거래 현장을 연상케 한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본질은 타인의 감정에 몰입하며 느끼는 대리 설렘과 인간관계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방송가는 오직 시청률과 화제성, 숏폼 클릭수를 받아내기 위해 더 맵고, 더 짜고, 더 아찔한 설정만을 억지로 주입하고 있다. 첫 만남을 침대에서 시키고, 동성인지 이성인지 모를 혼란을 던져주며, 부모들끼리 자식의 스펙을 두고 투전을 벌이게 하는 포맷은 대중문화의 건강한 스펙트럼을 넓히기보다 시청자들의 정서적 피로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선 넘는 자극이 일상화되면 대중은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고, 결국 연애 예능은 인격의 존중이나 진정한 사랑의 탐색 대신 말초적인 쾌감만을 좇는 기괴한 서커스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소재의 다양성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 뒤에 숨겨진 가치관의 왜곡을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방송사들과 플랫폼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증명하기 위한 '연애 실험'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고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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