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의 AI 컨텍스터 선언⑪] 텍스터는 번역하고, 컨텍스터는 통역한다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번역은 문자를 옮기고, 통역은 현장을 전달한다. 번역가는 텍스트 앞에 앉지만, 통역사는 두 사람 사이에 선다. 그 자리의 차이가 언어를 다루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든다. 인공지능(AI)은 지금 번역의 자리를 빠르게 채우고 있다. 그러나 통역의 자리는 아직 사람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응급실을 떠올려보라. 의료진이 외국어를 쓰는 환자에게 진단을 전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꺼내 번역 앱에 문장을 입력하고, 화면을 환자에게 내민다. 단어는 건너갔다. 그러나 그 순간 오가야 할 것들 — 의료진의 눈빛, 목소리의 결, 가족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두려움과 신뢰 — 은 화면을 넘어가지 못한다. 문장은 번역됐지만, 그 자리의 맥락은 통역되지 않았다.

토론토 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토론토메트로폴리탄 대학교(Toronto Metropolitan University) 연구팀이 올해 3월 발표한 리뷰 논문 「번역을 넘어서(Beyond Translation)」는 이 간극을 의료 현장에서 직접 들여다본다. 챗지피티(ChatGPT)-4와 구글 번역 도구(Google Translate)를 영어 퇴원 지시문에 적용했을 때 스페인어·중국어의 문장 수준 정확도는 90%를 넘었다. 

그러나 언어가 달라지고 문장이 복잡해질수록 결과는 달라졌다. 러시아어 번역에서는 지시문의 최대 6%에서 환자 이해나 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오류가 나타났다. 비유적 표현이나 감정적 어조, 문화적 함의가 끼어드는 순간 정확도는 뚜렷하게 떨어졌다. 

연구팀이 짚는 핵심은 이것이다. AI 번역은 짧고 구조화된 문서에서는 유용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실시간 소통과 감정 해석이 동시에 요구되는 임상 현장에서는 현 시점 기준 뚜렷한 제약을 보인다. 말을 정확하게 옮기는 것과, 그 말이 관계 안에서 올바른 무게로 전달되는 것은 처음부터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더 날카롭게 짚는 것은 여기서부터다. AI 번역이 의료 현장의 기본값으로 자리 잡을수록 오류의 무게는 이미 의료 접근성이 낮은 이들 — 이주민, 난민, 소수 언어 사용자 — 에게 불균형하게 쏠린다. 같은 화면을 두고 환자는 안도하고 의료진은 우려한다. 그 엇갈림 자체가 이미 관계의 균열이다. 도구의 빈틈이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의료 현장에만 있지 않다.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에모리 대학교(Emory University) 연구팀이 2025년 6월에 발표한 논문 「"ChatGPT, 나한테 어떻게 하라고 하지 마("ChatGPT, Don't Tell Me What to Do")"」는 분쟁 지역 인도주의 협상가 32명을 대상으로 한 설계 연구다. 국경없는의사회, 국제적십자위원회, 유엔 등 9개 기관 소속의 숙련된 협상가들이 참여했다. 

연구팀이 물은 것은 하나였다. AI는 고위험 협상에서 맥락 분석을 도울 수 있는가. 협상가들은 AI가 방대한 문서를 빠르게 정리하는 데는 쓸 만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한 것은 AI가 협상 전략을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함께 들여다보고, 선택지와 각각의 위험을 나란히 펼쳐볼 수 있는 도구였다. 협상의 본질이 데이터 처리가 아니라 감정과 문화적 배경, 인간의 비합리성을 읽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확인한 것도 그 방향이었다. 답을 대신 내려주는 AI보다 협상가 스스로 판단에 이르는 과정을 곁에서 돕는 AI가 실제 현장에서 더 선호됐고 더 잘 맞았다.

의료 현장의 상담사는 환자의 표정을 읽는다. 협상 테이블의 중재자는 상대방의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그 앎은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없다. 수없이 쌓아온 대화와 실패와 신뢰의 시간 속에 있다. AI는 언어를 빠르게 처리하지만, 언어가 품은 맥락까지 함께 전하지는 못한다. 그 간격이 바로 인간의 몫이 시작되는 자리다.

이 연재에서 말해온 '텍스터'는 AI가 옮겨놓은 언어를 그대로 내미는 사람이다. 전달은 한다. 그러나 그 말이 상대에게 어떤 무게로 닿는지는 묻지 않는다. 받아든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듣는지, 그 언어가 지금 이 관계 안에서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는 관심 밖이다. '컨텍스터'는 건네기 전에 먼저 멈춘다. 이 말이 이 사람에게,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들릴 것인가. 그것을 묻는 순간, 언어는 정보의 그릇에서 벗어나 관계의 언어가 된다. AI가 아무리 정확하게 단어를 옮겨도 그 질문만은 대신할 수 없다.

오늘 우리가 AI로 처리한 말들을 한번 돌아보자. 번역된 문장을 확인 없이 내밀지는 않았는가. 요약된 내용을 맥락 없이 그대로 넘기지는 않았는가. 상대가 듣고 싶은 말과 상대에게 필요한 말이 다를 때 어느 쪽을 골랐는가. 언어는 전송되는 것이 아니라 건네는 것이다. 전송은 도착 여부를 묻지만, 건넨다는 것은 상대의 손에 닿는 방식까지 생각하는 일이다. 그 차이가 작아 보여도 건넨 말은 신뢰가 되고 흘려보낸 말은 오해가 된다.

AI가 언어를 처리하는 속도는 이미 인간을 앞질렀다. 더 정확해질 것이고,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밀한 언어도 그것이 놓이는 관계의 맥락 없이는 절반밖에 전달되지 않는다. 번역은 텍스트 앞에서 완성되지만, 통역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완성된다. 그 자리에 서는 것, 그것이 컨텍스터의 일이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 /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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