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여름 휴가를 가야 하나."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주요 시중은행의 달러 현찰 환율이 1600원을 돌파하면서 해외 출국객과 송금족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외국인 투자자의 거센 매도세 속에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50원선을 돌파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자 현장 체감 환율이 먼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8일 은행권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현찰 매입률(소비자가 살 때)은 각각 1602.0원을 기록,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600원선을 단숨에 돌파했다. KB국민은행 역시 1598.4원까지 바짝 밀려 올랐다.
이에 따라 하계 휴가를 계획 중이던 직장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환율 무서워서 동남아 여행도 취소해야 할 판"이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울러 매달 정기적으로 달러를 송금해야 하는 기러기 아빠나 유학생들의 시름 역시 한층 깊어졌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유학 중인 A씨는 "환율이 너무 가파르게 올라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러다 다 굶어 죽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라며 "송금받을 때마다 체감하는 부담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고 토로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4.1원 내린 1535.0원에 마감했다. 환율은 전거래일보다 16.1원 급등한 1555.2원에 출발해 개장 직후부터 가파르게 오름세를 탔다. 특히 장중에는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이 나오기 직전까지 1556.0원까지 치솟으며 2009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날 오후 3시30분 기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3543억원 넘게 팔아치우며 21거래일 연속 매도했다.
외환당국은 변동성 확대에 대해 경고 조치를 취했다. 당국 관계자는 "최근의 환율 상승은 수급적인 요인 외에도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 등에서의 일부 투기성 거래가 변동성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며 "시장 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쏠림 현상을 용인하지 않고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점을 경신하자 국내 금융권은 일제히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 위기대응 계획 점검에 나섰다. KB금융그룹(105560)은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해 외환시장 변동성에 따른 그룹 차원의 방어 전략을 논의했다. 고환율로 발생할 수 있는 유동성과 자본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계열사별 외환 포지션을 조정하고 환헤지 실행 현황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신한금융그룹(055550)과 하나금융그룹(086790)도 자본 적정성 사수를 위해 고강도 리스크 관리에 돌입했다. 신한은행은 위기관리 단계를 발령하고 자회사들의 위험가중자산(RWA)을 주 단위로 모니터링하며 외화 유동성을 압박하는 요인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하나금융 역시 시장 변동성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그룹 위기상황관리협의회를 통해 자산 운용 기조를 보수적으로 선회하는 등 모니터링 체계를 대폭 강화했다.
우리금융그룹(316140)은 치솟는 환율의 극단적 시나리오를 가정한 단계별 컨틴전시 플랜을 재정비했다. 이미 지난 2022년부터 위기관리 전담 조직을 가동해 온 우리은행은 자본·유동성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즉시 대응 태세를 유지하며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대외적인 수급 악재가 해소되지 않는 한 당분간 원화 약세 압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반도체 수출이나 경상수지 호조 등 국내 매크로 지표 개선세와 동떨어지며 환율이 오르는 것은 수급적 요인에 기인한다"며 "20영업일 연속 이어지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와 이에 따른 달러 환전 수요, 미 고용지표 호조에 따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우려가 트리거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주요국 통화정책회의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리뷰가 예정된 이달 하순까지는 외인 매도 진정이나 환율의 하향 안정을 논하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대내 펀더멘털 악화나 달러 조달 자체의 문제가 아닌 만큼 대외 악재가 안정되면 빠른 되돌림이 나타날 수 있고 1580원선 안팎에서 저항선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속되는 고환율 흐름은 국내 채권시장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여력에도 적지 않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로 2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고환율발 수입물가 상승 압력까지 겹치게 됐다"며 "신현송 한은 총재가 물가·주택가격·가계부채와 함께 환율이 모두 금리 인상을 가리키고 있다고 언급한 만큼 한은의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태도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환율이 1500원대 초반 이상에서 고착화될 경우 시중 금리 상승 압력을 제어하기 어려워지면서 연내 기준금리 인상 폭 확대나 내년 인상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듀레이션(만기) 축소 등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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