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기업이 사회적 입장을 취하는 일이 선택이 아닌 리스크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소비자는 브랜드가 무엇을 파느냐만큼 무엇을 지지하느냐를 본다. 환경 문제, 인권, 다양성, 역사적 정의까지 기업을 향한 사회적 요구의 범위는 계속 넓어지고 있고, 이 압력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브랜드의 미래를 가르는 변수가 됐다.
사회적 압력 앞에서 침묵을 선택하지 않고 정면으로 자신의 가치를 내세운 브랜드가 있다. 나이키(Nike)가 2018년도에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을 광고 모델로 기용한 사례다.
앞서 캐퍼닉은 지난 2016년 미국 프로 미식축구(NFL) 경기 전 국민의례 시간에 일어서는 대신 무릎을 꿇는 방식으로 인종차별에 항의한 선수다. 미국에서 국민의례 중 기립은 국가와 국기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행위로 여겨지는데, 무릎을 꿇는 것은 그 관행을 거부하며 사회적 부당함에 저항한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공화당 보수 진영은 이를 국가와 군인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소셜미디어를 통해 캐퍼닉을 비난했고, 보수 성향 소비자 사이에서는 나이키 제품 불매운동이 번졌다. 나이키 신발을 불태우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지고, 주가는 광고 공개 직후 일시적으로 하락했다.
초반 시장 반응만 놓고 보면 나이키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수개월에 걸쳐 드러난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나이키의 온라인 매출은 광고 공개 후 수일 만에 30% 이상 상승했고, 브랜드 가치는 오히려 높아졌다. 나이키 미래 핵심 고객군인 10~20대 젊은 소비자층의 반응이 압도적으로 긍정적이었고, 인종 평등과 사회 정의에 민감한 진보 성향 소비자들의 강한 지지가 뒤따랐다. 단기적인 노이즈를 견뎌내자 장기적인 브랜드 충성도로 돌아왔다.
나이키가 이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십 년간 쌓아온 브랜드 정체성이 자리한다. 나이키는 오랜 기간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슬로건을 내세우며 도전, 저항, 개인의 한계 극복이라는 가치를 브랜드 중심에 뒀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고, 차별에 맞서는 개인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는 수십 년간 나이키가 일관되게 해온 이야기의 연장선이었고, 캐퍼닉을 기용한 광고는 돌발적인 사회적 선언이 아니라 브랜드가 오랫동안 걸어온 방향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됐다.
나이키가 여론 반발을 예측하지 못한 채 무작정 감행한 것도 아니다. 캠페인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반대 진영의 반발 규모와 자사의 미래 핵심 소비자인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데이터로 면밀하게 분석했고, 단기적 불매운동이 발생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득이 더 크다는 판단이 내부적으로 충분히 검토됐다. 용기 있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계산된 의사결정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 말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는 리스크를 회피하는 장치가 아니라, 리스크를 정확히 측정하고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을 판단하는 체계다. 어떤 메시지를 낼지, 그 메시지가 브랜드의 역사와 정합성이 있는지, 반발이 왔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를 사전에 검토하는 프로세스가 작동했을 때 브랜드는 사회적 논란 안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나이키는 이러한 거버넌스 체계가 제대로 작동한 경우였다.
나이키가 일부 소비자 반발에 대응한 방식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매운동이 거세지고 주가가 흔들렸을 때도 나이키는 입장을 철회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브랜드가 지지하는 가치를 일관되게 유지했고, 그 일관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에게 진정성으로 전달됐다.
반면 소비자 반발에 대해 뚜렷하지 않은 사회적 메시지를 냈다가 반발이 더욱 거세지게 되면 사실상 침묵으로 후퇴하는 기업은 진보적 소비자에게는 기회주의로, 보수적 소비자에게는 배신으로 읽히면서 양쪽 모두의 신뢰를 잃는 최악의 결과를 맞는다. 메시지를 내는 것보다 그 메시지를 끝까지 지키는 일이 더 어렵고, 그 지속성이 브랜드 진정성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 즉 기업이 사회적 입장을 취하는 행위가 시장에서 설득력을 얻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 메시지가 브랜드의 오랜 정체성과 맥이 닿아 있어야 하고, 반발이 왔을 때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내부적 확신과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사회적 선언은 진정성이 아니라 기회주의적 마케팅으로 읽히고, 소비자는 그 차이를 생각보다 정확하게 감지한다.
상편에서 다룬 ‘버드 라이트’의 실패와 나이키의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사회적 메시지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버드 라이트는 브랜드 역사와 무관한 사회적 트렌드를 외부에서 끌어들였고, 내부 검토 없이 실행했으며, 반발이 오자 입장을 모호하게 했다. 나이키는 수십 년간 쌓아온 브랜드 정체성의 연장선에서 메시지를 냈고, 리스크를 데이터로 계산했으며, 반발 앞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했다.
같은 사회적 논란의 시대를 보내면서도 두 브랜드의 결과가 갈린 것은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메시지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이를 다루는 구조와 태도의 차이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기업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ESG 경영이 확산되면서 사회적 가치를 브랜드에 담으려는 시도가 늘고 있지만, 역사적·민족적으로 예민한 소재는 소비자에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는 일제강점기, 분단,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집단적 상처와 자부심이 뒤섞인 영역이고, 그 감각은 세대를 이어 지금도 살아있다. 나이키가 수십 년간 쌓아온 브랜드 정체성과 정밀한 내부 검토를 토대로 링 위에 올랐던 것처럼, 한국의 역사와 민족 정서에 맞닿은 소재를 다루려는 기업은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준비가 요구된다.
결국 브랜드가 이념의 링 위에 서는 문제는 오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이키는 링 위에 올랐고, 버드 라이트도 링 위에 올랐다. 차이는 누가 자신이 왜 거기 서 있는지를 알고 있느냐였다.
사회적 가치를 표명한 브랜드에게 소비자가 진짜로 묻는 것은 어떤 편이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있느냐다. 그 자격은 선언으로 얻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 소비자와 쌓아온 신뢰와 일관된 행동으로만 증명된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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