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미정 기자·장고은 인턴기자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도서제작 영역 전반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출판 기획은 물론 편집, 번역, 원고 작성 등 출판 업무 전 과정에서 AI 활용이 늘고 있다. AI가 기획부터 초안까지 직접 쓰는 생성형 AI 기반 창작물도 확대되고 있다. AI가 출판 전 과정에서 활용되면서 출판업계는 새로운 쟁점으로 마주하고 있다.
◇ 기획·편집·번역·창작… AI 활용 ‘무한확장’
출판업계에서 AI 활용은 확대되는 추세다. 1월 한국출판연구소가 발간한 ‘2025 출판사의 AI 활용 가이드’에 따르면 생성형 AI는 출판 기획, 편집, 제작, 유통, 마케팅 등 출판 전 과정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해당 연구소가 파악한 AI 활용 동향에 따르면 기획·편집 분야에선 AI 글쓰기 도구로 초고 생산 속도를 높이고, 맞춤법 검사와 문장 가독성 분석까지 AI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번역 분야는 AI 초벌 번역 후 인간이 검토·수정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는 분위기다. 북디자인 분야에서도 AI 디자인 툴 활용이 확산되고 있다. AI 오디오북 제작도 활용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생성형 AI를 기반을 한 창작물 제작 역시 출판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박정인 덕성여대 교수는 지난달 29일에 열린 ‘AI 시대의 출판 생태계, 기회와 위기 사이에서 길을 찾다’ 긴급포럼에서 “AI는 초안 작성, 아이디어 생성, 문장 교정, 구조 설계까지 수행하며 사실상 공동저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대규모 언어모델을 활용한 소설 창작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깜깜이’ AI 활용 출판물에 혼란
AI 활용이 보조적인 수단을 넘어, 편집·기획·창작 영역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출판계는 여러 쟁점을 마주하고 있다.
먼저, 독자의 알 권리 충족 문제다. AI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지만 책 제작 과정에서 독자는 어느 정도까지 AI가 활용됐는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AI 활용 표기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어 이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는 도서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기본법)’이 시행돼 생성형 AI 활용에 대한 표시 의무 규정이 생겼지만 법 준수 대상은 ‘AI사업자’다. AI기본법에 따르면 AI사업자(AI개발사업자·AI이용사업자)는 생성형 AI 또는 이를 이용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그 결과물이 생성형 AI에 의해 생성됐다는 사실을 사전에 고지하고 표시해야 한다.
AI기업의 생성형 AI 서비스를 단순 이용하는 경우엔 별도 표시 의무가 없다. 이에 현재로선 서적 기획, 편집, 번역, 원고 작성 단계에서 기존 생성형 AI 서비스를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법적 표시 의무를 지지 않는다.
이에 출판사가 자발적으로 표기하지 않으면 AI 활용도서를 구별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도서유통 현장에선 AI활용 도서를 구분하기 어려워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 서점 관계자는 “따로 카테고리가 나눠져 있지 않아 어떤 책이 AI 활용도서인지 알기 어렵다”며 “표지를 보면 AI 책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독자들 사이에선 AI의 사용이 의심되는 책을 출간한 출판사를 찾아내 카페에 공유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독자들이 AI 활용 서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배경엔 저서의 신뢰성과 품질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AI 활용서적 중엔 품질 논란을 일으킨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 A출판사의 세계문학시리즈에 ‘레게노’, ‘스불재’, ‘갓생’과 같은 고전과 동떨어진 신조어가 등장해 논란이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번역에는 생성형 AI인 ‘제미나이’, ‘클로드’의 이름이 적혀 있어 AI가 적극 활용됐음을 짐작케 했다.
이 외에도 AI는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으로 근거 없는 정보를 제시하는 경우가 있어, AI 활용 저서의 신뢰성 및 품질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 클릭 몇 번에 출판?… ‘딸깍도서’ 논란이 던진 숙제
AI 서적 이슈는 지난해 불거진 ‘딸각출판’ 논란을 계기로 더욱 뜨거운 쟁점이 됐다. 출판사 루미너리북스는 AI 기술을 활용해 1년간 약 9,000여 권의 전자책을 출간, 이른바 ‘딸깍출판’ 논란을 불러왔다. ‘딸깍출판’은 AI를 활용해 단기간에 책을 만드는 현상을 비판하며 나온 신조어다. 컴퓨터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원고를 작성하고 최소한의 편집만을 거쳐 대량으로 책을 찍어내는 방식을 뜻한다.
루미너리북스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경제학, 인문학, 자기 계발 등 여러 영역의 책을 단기간에 대량 출간했다. 출간한 책의 저서는 대부분 OO 에디팅 팀으로 표기했다. 루미너리북스는 AI 활용 사실을 고지했지만 이러한 방식의 대량 도서 출간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도서 창착의 신뢰를 흔들고 출판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루미너리북스 측은 2월 홈페이지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루미너리북스 측은 “인간의 개입 없이 AI로만 책이 제작되는 것은 아니”라며 “출판 과정에는 초안 기획, 구성 설계, 내용 검토, 교정 등 모든 단계에서 인간의 작업이 상당 부분 투입된다”고 해명했다.
이어 “당사는 단순히 책을 많이 출판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며 “한국어에 특화된 AI 언어모델 개발을 통한 한국 AI 기술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장기적인 비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납본제도를 악용해 수익을 올리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전혀 사실이 아니며, 납본을 통해 단 1원의 보상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납본제도는 출판물을 국립중앙도서관에 제출하면, 책 1부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최근 AI 출판물이 확대되며 납본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국립중앙도서관은 “출판동향 모니터링을 강화해 납본 대상 여부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AI 활용 저서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된 AI 저서가 대량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창작 영역의 AI 활용은 첨예한 논쟁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