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 떠나는 '비둘기파' 신성환 위원의 당부…"물가 우려에 인하 논의 부담"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대표적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로 꼽혔던 신성환 금통위원이 이임식을 하루 앞두고 "지금은 기준금리 인하를 논하기에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물가 우려를 강하게 드러냈다.


신 위원은 11일 오전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압력이 굉장히 크고, 미래 물가에 대한 불확실성도 매우 높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동안 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주도해왔던 신 위원의 이같은 발언은 최근 중동 사태 등에 따른 대외 여건 악화가 통화정책의 방향성을 선회시켰음을 시사한다.

신 위원은 통화정책 결정의 최우선 순위에 대해 "인플레이션 대응이 최우선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물가가 목표치인 2%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면 성장과 인플레이션이 상충하더라도 당연히 물가에 무게를 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인하 소수의견을 냈던 것도 "인플레 우려가 크지 않다는 전제 아래서였다"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연말 유가 90달러대 전망…물가와의 싸움 더 격해질 것"

특히 향후 금리 경로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는 '국제유가'를 꼽았다. 당초 연말 70달러 수준의 안정을 예상했으나, 현재는 90달러선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며 유가 고공행진이 가져올 2차 파급 효과를 경계했다.

신 위원은 "유가가 연말까지 고공행진을 지속하면 다른 물가에 미치는 2차 충격을 피하기 굉장히 어렵다"며 "물가와의 싸움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격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가 고통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유가발 2차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한은의 의무"라고 역설했다.

금리 인상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유가 흐름이 결정적이라고 짚었다. 그는 "생산자들은 잠깐 오른 유가는 어느 정도 자체 흡수하지만, 고공행진이 장기화되면 이를 버텨내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내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여부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상황 전개와 유가의 궤적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경기 양극화 문제도 주요 현안으로 언급됐다. 신 위원은 "전체 경제에서 10% 남짓의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섹터가 헤드라인 지표를 결정하는 상황"이라며 "나머지 70~80%는 여전히 굉장히 어려운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산업이 자본 집약적이라 고용 창출 효과가 제한적이고 수출 지표 개선이 실질적인 민간 소비나 서민 경제로 이어지는 고리가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금리 인상 시 취약 부문에 가해질 충격도 우려했다. 신 위원은 "양극화 상황에서 적정 금리가 섹터마다 다를 수 있는데, 이미 어려운 부문은 지금 금리 수준도 높게 느끼고 있다"면서도 "통화당국에 주어진 의무가 물가 안정인 만큼, 어쩔 수 없이 물가를 잡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겠느냐"고 물가 대응 우선 원칙을 재확인했다.


최근 도입·확대된 포워드가이던스(선제적 안내)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이 그리는 미래 모습과 시장이 예상하는 미래가 크게 다를 경우 정책 결정이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양측의 시각을 가능한 한 일치시키는 것이 포워드가이던스의 목적"이라고 했다.

다만 "이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그린 미래 모습이지 커밋먼트(약속)는 아니다"라며 "예측이 자주 틀리면 중앙은행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환율·국고채 금리 '오버슈팅' 판단…해외 투자 수요, 원화 약세 부추겨"

원·달러 환율에 대해서는 현 수준이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고 봤다. 그는 "원화 약세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미 금리 역전이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지금 환율은 과도하게 저평가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국내 거주자의 해외 주식 투자 수요가 단기간에 급격히 늘어난 점이 원화 약세를 심화시키는 주요 배경이라고 분석하면서도 "여러 자금 흐름을 볼 때 환율은 지금보다 하향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냐"는 전망을 내놓았다.

국고채 금리 상승 해석과 관련해서는 “미국 장기채 금리 상승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고, 일부 기대인플레이션과 재정발 인플레이션 우려도 반영돼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으로 외국 자금이 유입되는 상황에서도 국고채 금리가 미국 못지않게 상승한 점은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한은 시장국 등의 면밀한 스터디를 통해 물가와 성장에 주는 메시지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새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시대 개막에 따른 파장에 대해서는 "(연준의) 새 리더십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가거나 대차대조표 축소를 진행할 경우 달러 스퀴즈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면서도 "새 연준 의장이 정책 목표를 훨씬 더 능수능란하게 다룰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신 위원은 우리나라의 높은 저축률과 부진한 민간소비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도 재차 피력했다. 그는 "경제 성장률이 높은 상황에서도 민간 소비 증가율이 만족스러운 수준에 못 미치는 이유 중 하나가 과도한 저축률"이라며 "가난하게 살다가 부자로 죽는 시스템"을 바꿔 국민이 잘 살고 잘 떠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저축 구조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해 민간 소비의 견실한 기반을 만드는 것이 한국 경제의 중요한 과제라는 진단이다.

한편, 신 위원은 임기 중 아쉬운 점으로 "지난해 8월 금리를 내릴 수 있었을 때 좀 더 강하게 주장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지난 2022년 7월 취임해 임기 중 7차례 소수의견을 낸 신 위원은 금통위의 대표적 비둘기파로 재임 내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위원은 오는 12일 이임식을 끝으로 금통위를 떠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로 복귀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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