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 현장은 질환별 전문화를 통해 환자 중심의 정밀 의료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주요 병원의 핵심 진료 분야와 특화 센터를 중심으로 저마다 축적해온 경쟁력과 치료 역량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서울 울산로에 위치한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는 지난 30여 년간 말기 질환 환자 치료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1992년 뇌사자 장기이식을 시작으로, 올해 4월 기준 간이식 9300례를 넘어섰다. 수술 건수의 축적과 함께 국내 장기이식의 흐름 역시 이곳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
◇ 1992년 뇌사자 장기이식 기틀 마련…대한민국 이식 의학 개척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의 발자취는 국내 이식 의학 발전 과정과 맞닿아 있다. 1991년 다장기·뇌사자 이식 체계를 구축한 이후, 1992년 5월 국내 처음으로 뇌사 기증자 다장기 적출과 이식에 성공했다. 당시 생소했던 뇌사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후 고난도 이식 영역이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1992년 7월 췌장-신장 동시이식, 같은 해 8월 간이식, 11월 심장이식이 잇따라 시행됐다.
이어 △1994년 생체 부분 간이식 △1999년 간-신장 동시이식 △2003년 성인 간 분할 이식 △2005년 심장-신장 동시이식 △2006년 신장-췌장 생체 부분 동시이식 △2007년 간-심장 동시이식으로 복합 이식 범위가 넓어졌다.
다장기 이식 역시 확대됐다. 2011년 소화기 7개 장기 동시이식이 이뤄졌고, 이후 간-폐(2012년), 간-심장-폐 동시이식(2015년), 생체 폐이식(2017년)으로 적용 영역이 확장됐다.
수술 방식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1999년 변형우엽 생체 간이식, 2000년 2대1 생체 간이식, 2003년 교환 간이식은 세계 최초로 시행된 방식이다. 이들 술기는 국제 이식 분야에서 표준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 변형우엽·2대1 등 독자 수술법 고안…생체 간이식 치료 한계 극복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새로운 수술법으로 치료 범위를 넓혀왔다. 이승규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가 1998년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 ‘변형우엽 생체 간이식’이 대표적이다.
이 수술법은 이식되는 우엽 간에 중간정맥을 새로 형성해 간 전체 영역의 혈류 배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연간 약 30례 수준이던 생체 간이식은 100례 이상으로 늘었고, 수술 성공률도 70% 수준에서 95% 이상으로 향상됐다. 변형우엽 생체 간이식은 현재 여러 간이식센터에서 활용되는 수술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에는 ‘2대1 생체 간이식’이 도입됐다. 두 명의 기증자로부터 간 일부를 받아 한 명의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식으로, 기증자 간의 좌우엽 비율이 맞지 않거나 지방간, 고령 등으로 단일 기증이 어려운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이 수술법은 지금까지 650명 이상의 환자에게 적용됐다.
ABO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도 확대됐다. 현재까지 1126례 이상 시행됐으며, 병원 측에 따르면 혈액형이 일치하는 경우와 유사한 수준의 치료 성적이 보고되고 있다.
기증자 안전 관리도 함께 이뤄졌다. 복강경과 최소 절개를 활용한 간 절제술이 적용되면서 회복 기간 단축과 흉터 감소가 확인됐다. 생체 간이식 기증자 가운데 사망이나 중대한 합병증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이 같은 수술 성과는 환자 사례를 통해서도 이어지고 있다.
1994년 국내 첫 생체 부분 간이식 수술을 받은 생후 9개월 환자 이지원 씨는 이후 건강하게 성장했다. 30년이 지난 2024년 당시 수술을 집도했던 이승규 석좌교수와 다시 만나며 장기이식의 장기 생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됐다.

◇ 신장·심장·폐 등 주요 장기별 최다 실적 및 다학제 정밀 의료 시스템
신장이식과 심장이식, 폐이식 등 장기별 치료도 함께 확대돼 왔다. 신장이식은 7800례 이상 시행됐으며, 1990년 뇌사자 신장이식을 시작으로 2019년 이후에는 연간 400례 이상으로 늘었다. 현재 국내 신장이식의 약 20%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특히 생체 신장이식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혈액형 부적합이나 교차반응 양성 등 거부반응 위험이 높은 환자군에도 수술이 적용되고 있다. 이 같은 고위험군을 포함한 상황에서도 이식신 생존율(이식 후 신장기능 정상 환자의 비율)은 1년 98.5%, 5년 90%, 10년 77.1%로 집계됐다.
수술 방식에도 변화가 이어졌다. 로봇 신장이식이 국내에서 처음 도입된 이후 약 200례가 시행됐다. 로봇을 활용하면 시야를 확대해 미세문합을 정밀하게 수행할 수 있고, 절개 범위를 줄일 수 있어 감염이나 탈장 등 합병증 발생을 낮추는 데 활용된다.
심장이식은 960례 이상 시행됐다. 말기 심부전 환자에게 적용되는 치료로, 생존율은 1년 95%, 5년 86%, 10년 76% 수준이다. 이식까지 시간이 필요한 환자에게는 좌심실 보조장치가 활용되며 심장 기능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이어진다.
폐이식은 2008년 뇌사자 폐이식을 시작으로 300례를 넘어섰다. 환자의 약 66%는 장기간 에크모(ECMO·인공심폐보조장치) 또는 기계환기에 의존한 상태에서 수술이 진행됐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생존율은 1년 76.5%, 3년 67.9%, 5년 64.2%, 7년 60.5%로 집계됐다.
진료는 다학제 협진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심장혈관흉부외과를 중심으로 호흡기내과, 감염내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중환자실 등이 함께 참여해 수술 전후 환자 관리를 진행하고 있다.

◇ 美 미네소타대 기술 역전수 및 글로벌 의료 자립 체계 구축 지원
센터의 활동 범위는 국내를 넘어섰다. 2015년 미국 미네소타의대의 제안으로 시작된 생체 간이식 전수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10년간 미네소타의대 의료진 18명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법을 교육받았다. 1950년대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의료진이 미국에서 의료기술을 배웠던 흐름과 달리, 최근에는 미국 의료진이 국내 의료기관을 찾아 기술을 배우는 형태로 협력이 이어지고 있다.
양 기관은 공동 연구와 교육 협력도 병행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과 울산의대, 미네소타의대는 장기이식과 줄기세포 분야 연구 협약을 체결하고, 간이식 임상 연구와 재생의학·중개연구, 장기이식 평가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협력은 다른 국가로도 확대됐다. 몽골과 베트남 등에서 의료진 파견과 연수가 이어졌고, 현지에서도 장기이식 수술이 가능하도록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해외 전수는 실제 의료 체계 구축으로 이어졌다. 몽골에서는 ‘아산 인 아시아’ 프로젝트를 통해 의료진 교육과 현지 수술 지원이 병행됐다. 2011년 현지에서 첫 생체 간이식 수술이 시행된 이후,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2015년부터는 몽골 의료진이 독자적으로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15년간 192명의 의료진이 연수를 받았고, 214명이 현지에 파견됐다. 최근에는 몽골 내에서 300례 이상의 생체 간이식이 시행되며 자립 체계를 구축했다.
베트남에서도 20회 이상 생체 간이식 술기가 전수됐고, 2017년에는 현지 의료진이 독자적으로 수술을 시행했다. 이 외에도 터키, 카자흐스탄, 카타르 등에서 생체 간이식이 처음 도입됐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는 현재 진료와 연구, 교육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최초’의 기록에서 출발해 수술 방식의 변화와 장기별 치료 확대, 해외 전수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장기이식 분야 전반의 기반을 다져왔다. 이러한 축적은 환자 치료 성과와 함께 의료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황신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소장은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는 많은 증례 뿐 아니라 각 장기 별로 우수한 이식 생존율과 꾸준한 연구 성적, 앞선 교육 시스템을 입증하며 세계적인 이식 센터로 자리매김했다”며 “앞으로도 이식 환자들의 생존율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진료와 연구, 교육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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