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 항소심 대폭 감형에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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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명이 숨진 ‘아리셀 참사’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왼쪽)와 박중언 총괄본부장이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4년과 7년을 선고받았다. / 뉴시스
23명이 숨진 ‘아리셀 참사’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왼쪽)와 박중언 총괄본부장이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4년과 7년을 선고받았다. /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무려 23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리셀 참사’와 관련해 2심 판결이 내려진 가운데,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그의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래 최고형을 내렸던 1심 대비 큰 폭의 감형이 이뤄지면서다. 노동계는 물론 시민사회계와 법조계, 그리고 정치권에서까지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는 모습이다.

◇ ‘유족과 합의’ 두고 엇갈린 양형 판단

2024년 6월,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아리셀 배터리 공장이 화마에 뒤덮이면서 무려 2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였던 이 공장에선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대피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총체적 난국이 빚은 참사이자, 역대 최악의 참사로 꼽힌다.

지난 22일, 수원고등법원에선 이러한 ‘아리셀 참사’로 기소된 박순관 대표와 그의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있었다. 박순관 대표는 코스닥상장사 에스코넥의 최대주주로 아리셀도 거느려왔다.

먼저, 지난해 9월 내려진 1심 판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심 재판부는 두 사람 모두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래 최고형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결과는 어떠한 것으로도 회복될 수 없다”며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약 7개월 뒤 내려진 이번 항소심 판결은 무게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박순관 대표에겐 징역 4년을,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겐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큰 폭의 감형이 이뤄진 것이다.

기소된 주요 혐의에 대한 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유무죄 판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심과 항소심 모두 박순관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주위적 공소사실인 비상구 설치 의무를 제외한 다수의 안전주의 의무 위반도 동일하게 인정했다.

판단이 엇갈린 결정적 대목은 ‘양형’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유족과의 합의가 이뤄진 점을 1심에 비해 양형에 적극 반영했다. 1심은 유족과의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하면서 평소 안전 비용을 아끼다 산재 발생 시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유족과 합의를 시도하고, 생계유지 등의 문제로 인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족들이 합의에 응하면 이를 이유로 선처를 받는 관행을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이러한 관행이 지속되고, 다른 기업가들의 ‘학습효과’로 이어지면 우리 사회의 산재 문재가 근절될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유족과의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할 경우 피해회복 노력을 소극적으로 하게 하거나 포기하게 만들어 오히려 피해자들의 충분한 피해회복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아리셀 참사’ 항소심 판결을 두고 노동계와 법조계, 정치권 등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뉴시스
‘아리셀 참사’ 항소심 판결을 두고 노동계와 법조계, 정치권 등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뉴시스

◇ 쏟아지는 비판·우려… “돈으로 형량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

이 같은 항소심 판결은 거센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선고가 이뤄진 법정 현장에서부터 소란이 빚어졌을 정도다. 선고 직후 발언 기회를 얻은 한 유족은 눈물을 흘리며 재판부를 향해 호소했고, 유족을 대리한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고 항의했다. 이들은 이후 법원 앞에서 마련된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도 분통을 터뜨렸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재판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고, 죽지 않고 일하기 위해 노력해온 모든 노동자들을 모욕한 것”이라며 “오늘의 참담한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 하겠다는 사법의 폭거이자, 법과 원칙을 바로잡아야 하는 사법부가 스스로 자기의 존재가치를 부정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도 “이번 판결은 단순한 양형 판단을 넘어 사회 전체에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가볍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는 중대한 문제”라며 “일터에서 사용자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아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해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안심하고 일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라고 규탄했다.

한국노총 역시 “예견된 참사였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왜 막지 못했는가’에 대한 책임은 끝내 묻지 않은 판결”이라며 “사람이 죽어도, 사후 수습을 하면 책임은 줄어든다는 메시지만을 또렷이 남겼다”고 유감과 분노를 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또한 논평을 내고 “우리 모임은 아리셀 참사 1심 징역 15년형을 4년형으로 감형한 수원고등법원 제1형사부 판결이 부끄럽다”고 밝히는 한편 재판부의 주요 판단과 양형, 편파적 재판 진행 등을 조목조목 반박 및 비판했다. 

비판의 목소리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나왔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참혹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대못을 박은 이번 판결에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한다”며 “사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무력화하고 있다. 이 정도 참사조차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면, 앞으로 어느 기업이 비용을 투자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 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생계의 기로에 선 유족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합의를 이끌어 내고, 이를 근거로 형량을 깎아주는 관행은 결국 ‘돈으로 형량을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사회에 주는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패가 되도록 법과 제도를 보완하는데 끝까지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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