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박상용 검사와 서민석 변호사의 녹취파일 논란 후폭풍이 거세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을 수사한 담당 검사와 피고인 측 변호인 사이에서 불거진 통화 녹취를 둘러싸고, 국회에서는 ‘조작 기소’냐 ‘짜깁기 공개’냐를 두고 정쟁이 격화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박상용 검사는 관련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와 담당 기자 그리고 서민석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 검사 측은 녹취가 일부만 공개되면서 맥락이 왜곡됐고, 그로 인해 명예가 훼손됐다는 입장이다.
이 주장 자체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소송 제기 자체는 법이 보장한 정당한 권리다. 왜곡된 보도나 일방적 주장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법적 판단을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대응이다. 특히 수사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당사자로서는 문제를 바로잡고 싶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신의 명예와 직무에 대한 신뢰가 걸린 문제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으려는 대응은 충분히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송은 법적으로 정당한 권리지만 그 권리가 ‘중립적 도구’로만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송은 판결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제기되는 순간부터 이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상대가 개인이거나 자원이 제한된 경우라면 소송은 곧 부담이 된다.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고, 수개월에서 수년의 시간을 감당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발언 하나하나를 다시 계산하게 된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 자체로 족쇄다.
이 때문에 이른바 ‘입막음 소송’으로 불리는 현상이 문제로 지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적 판단 이전에 이미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는 공익적 발언이나 비판을 위축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소송에서 이기느냐 지느냐보다 소송을 ‘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이다.
물론 이번 사안을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소송을 제기한 쪽 역시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는 상황을 바로잡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녹취처럼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자료라면 일부만 공개됐을 경우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 또한 충분히 성립 가능한 주장이다. 실제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인식이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그 문제의식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질문은 있다. 만약 이 소송이 결과적으로 공익적 발언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했다면 그 책임은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가다. 한국 법체계에도 이를 제어할 장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장치는 형사와 민사 영역에서 각각 다르게 작동한다.
형사 절차에서는 명백히 허위 사실로 상대를 처벌받게 할 의도가 있었다면 무고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무고가 인정되기까지는 ‘허위’뿐 아니라 ‘고의’까지 입증해야 하는 높은 문턱이 존재한다. 단순히 사실과 다른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결과, 무리한 고발이라 하더라도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제한적이다.
민사소송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송이 권리남용에 해당할 경우 별도의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이 역시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소송은 끝까지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은 피소된 쪽이 먼저 떠안게 된다. 설령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일부 소송비용만 부담하면 그만이다.
결국 남는 문제는 따로 있다. 상대가 감당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위축된 발언의 기회는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형사 고발이든 민사소송이든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발생한 부담은 결과와 별개로 남는다.
이와 관련해 해외에서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 미국의 anti-SLAPP 제도는 소송을 끝까지 끌고 가서 판단하지 않는다. 공적 사안에 대한 발언을 겨냥한 소송인지부터 따져보고,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초기 단계에서 기각한다. 이 경우 소송을 제기한 쪽이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을 부담한다. 소송의 결과가 아니라, 소송이 어떻게 사용됐는지에 책임을 묻는 구조다.
결국 기준의 문제다. 소송을 제기할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그 소송이 상대의 발언이나 행위를 위축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면, 그 역시 검증과 책임의 대상이 돼야 한다. 이제는 소송의 자유를 말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남용에 어떤 대가를 물을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세워야 할 때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