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 현장은 질환별 전문화를 통해 환자 중심의 정밀 의료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주요 병원의 핵심 진료 분야와 특화 센터를 중심으로 저마다 축적해온 경쟁력과 치료 역량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연세암병원은 대한민국 암 치료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혁신을 이어왔다. 1969년 국내 첫 암센터를 개소한 이후 축적된 임상 경험과 의료 데이터는, 최근 최첨단 비침습 치료 기술인 중입자치료와 결합해 새로운 치료 국면을 열고 있다.
◇ ‘고정형 1대 + 회전형 2대’…단일 기관 세계 첫 복수 회전형 체계
연세의료원은 올해 회전형 치료기 2호기 가동을 본격화하며, 기존 고정형 치료기 1대와 회전형 치료기 2대를 포함한 총 3대의 중입자치료 시스템을 완비했다. 단일 기관 기준으로 세계 첫 ‘회전형 치료기’ 2대 체계를 구축하며 암 치료 패러다임 전환을 본격화했다.
회전형 치료기는 기기가 360도 회전하며 병변을 다양한 각도에서 정밀 타격할 수 있어 장기 보호와 치료 정밀도 측면에서 고정형보다 유리하다.
중입자치료의 핵심은 한자 ‘무거울 중(重)’ 그대로 입자의 질량에 있다. 기존 양성자치료에 활용되는 수소 입자보다 12배 무거운 탄소 원자를 사용하며, 이를 원자 가속기인 싱크로트론을 통해 빛의 속도 약 70%까지 끌어올려 에너지 빔을 생성한다.
이 에너지 빔은 체내 정상 조직을 통과할 때는 영향을 상대적으로 최소화하다가, 3D 엑스레이로 설정한 암세포 좌표에 도달하는 지점에서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발산하고 사라진다. 이른바 ‘브래그 피크(Bragg peak)’라는 특성 덕분에 정상 조직 손상을 줄이면서도 암세포 사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중입자치료의 강점이다.

◇ 전립선암서 난치암까지…임상 성과로 입증된 치료 효과
연세의료원은 지난 2023년 전립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국내 첫 고정형 치료기 가동을 시작한 이후 비약적인 성과를 축적해왔다. 실제 첫 치료 환자의 경우, 치료 전 7.9ng/mL였던 전립선 특이항원(PSA) 수치가 치료 후 0.01ng/mL 미만으로 떨어지며 암세포가 현저히 감소하는 결과를 보였다.
치료 과정의 ‘환자 경험’ 측면에서도 강점이 부각된다. 치료 시간은 1회당 2분 내외로 짧고 통증이 거의 없어, 전체 12회의 치료를 한 달 이내에 마칠 수 있다는 점이 환자 만족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중입자치료는 고령 환자나 수술이 어려운 환자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 종양이 수술적 절제가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기존 방사선치료에 반응이 낮은 난치성 고형암의 경우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중입자치료는 치료 선택지가 부족했던 환자군에서 적용 가능한 비침습 치료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회전형 치료기 2대가 모두 가동되면서 기존 전립선암 중심이던 적용 범위는 췌장암·간암·폐암 등으로 확대됐다. 현재 해당 암종에 대해 치료가 진행되고 있으며, 향후 두경부암·골육종암 등 난치성 고형암 전반으로 적응증을 순차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외과적 절제가 어려운 암은 물론 국소 재발한 암까지 치료 영역을 넓혀 나간다는 방침이다.
◇ 일본 데이터가 뒷받침…다학제·전주기 암 치료 체계로 확장
1994년 중입자치료를 시작해 현재도 가장 활발하게 시행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2022년까지 약 1만4000명의 환자가 중입자치료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가 항암제와 중입자치료를 병행했을 때 2년 국소제어율(치료한 부위에서 암이 다시 자라지 않고 억제된 비율)이 약 80%까지 향상된 결과가 보고됐다.
간암 환자에서는 2년 국소제어율이 90%를 넘는 결과도 확인됐으며, 일부 연구에서는 92.3%에 달하는 수치도 제시됐다. 비교적 큰 종양에서도 높은 국소제어율을 보였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중입자치료는 기존 방사선치료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난치암에서도 결과를 보이고 있다. 골육종암에서는 기존 치료보다 생존율이 개선된 사례가 확인됐고, 수술이 어려운 두경부 점막흑색종에서도 국소제어율이 나타났다. 특히 척추골육종암 환자에서는 5년 국소제어율 79%, 생존율 52%를 기록했다. 이는 중입자치료가 더 이상 일부 암에 제한된 보조 치료가 아니라, 일부 난치성 암에서는 핵심 치료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세암병원 강점은 첨단 장비 도입에 그치지 않고 이를 임상 현장에서 실제 치료로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외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가 함께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다학제 진료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협진 체계는 중입자치료의 정밀성을 치료 성과로 연결하는 기반으로 작용한다. 수술이 어렵거나 국소 재발한 난치성 암 환자에서는 이 같은 협진 구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또한 암예방센터, 개인맞춤치료센터, 완화의료센터 등과의 연동을 통해 진단부터 치료, 추적 관찰, 삶의 질 관리까지 이어지는 환자 중심의 전주기 통합 암 치료 모델을 구축했다.
연세의료원 관계자는 “중입자치료기를 통해 더 많은 환자들에게 부작용이 적은 정밀 치료의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며 “암 치료의 혁신을 선도해 환자의 생명 연장을 넘어 삶의 질까지 보존하는 의료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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