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유튜브에 올라온 수학 강의 영상 하나가 전 세계 학습자 사이에서 조용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강의를 들은 사람들 반응이 쌓이면서 하나의 플랫폼에 대한 가능성이 보였고, 2008년 칸아카데미(Khan Academy)가 설립됐다.
칸아카데미는 한국어를 포함한 50개 이상 언어로 콘텐츠를 제공한다. 수학, 과학, 경제학, 인문학, 컴퓨터 공학까지 수만 개 강의를 약 150개국 월간 1억5000만명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한 사람의 작은 실험이 글로벌 교육 인프라가 된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비즈니스 모델 관점에서 핵심적인 질문이 생긴다. 제품을 팔지 않고, 구독료도 받지 않으며, 광고도 게재하지 않는 구조에서 연간 수백억원 규모 운영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는가. 답은 플랫폼 거버넌스 기반의 다각적 파트너십 모델이다. 바로 이 구조가 칸아카데미를 단순한 콘텐츠 제공자가 아니라 교육 생태계 허브로 만든 핵심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아마존 같은 글로벌 빅테크와 민간 재단이 주요 후원자인데, 이들의 참여가 단순한 기부와 다른 이유가 있다. 구글은 수백만달러(수십억원) 규모 지원으로 플랫폼 인프라와 다국어 번역을 직접 담당했다. 게이츠 재단은 누적 수천만달러(수백억원)를 투자하며 교육 데이터 분석과 커리큘럼 개발에 자신의 핵심 역량을 투입했다. 돈만 낸 게 아니라 각자가 가장 잘하는 것을 가져온 구조다.
비영리 법인이라는 조직 형태가 이 파트너십을 가능하게 만드는 전제 조건이다. 영리 기업이라면 투자자는 수익 배분과 지분 구조를 먼저 따질 수밖에 없는데, 비영리 구조에서는 투입된 자원이 전액 미션수행에 재투자된다는 전제가 처음부터 명확하다. 파트너 입장에서는 자신이 투입한 자원이 경쟁사 이익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신뢰가 생기고, 그 신뢰가 대규모 협력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파트너십 범위는 민간을 넘어 정부와 공교육 시스템으로도 이어진다. 미국 내 여러 주의 공립학교가 칸아카데미를 정규 수업 보조 도구로 채택했고, 인도 정부는 국가 차원의 교육 격차 해소 프로그램에 칸아카데미 콘텐츠를 연계했다. 공교육이 구조적으로 따라가기 어려운 개인 맞춤형 학습 경험을 민간 플랫폼이 채워주는 방식으로, 정부 입장에서도 예산 대비 효율이 높은 협력 모델이 된다.
칸아카데미가 운영하는 마스터리 러닝(Mastery Learning) 방식은 이 플랫폼의 교육적 차별성을 만드는 핵심 원리다. 일반적인 학교 수업은 학생 이해 여부와 관계없이 정해진 속도로 진도를 나가는데, 마스터리 러닝은 현재 단원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확인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해하지 못한 채 진도만 앞서가는 구조에서 누적되는 학습 결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학습자 개인의 속도에 맞춰 경로가 조정된다.
여기에 AI(인공지능) 기반 튜터 시스템인 칸미고(Khanmigo)가 더해지면서 플랫폼 경쟁력이 한 단계 올라섰다. 칸미고는 정답을 바로 알려주는 대신 학습자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설계됐는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AI로 구현한 형태다. 교사 한 명이 수십 명을 동시에 돌봐야 하는 현실에서, 개인별 맞춤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AI 튜터는 교육 자원의 불균형을 메우는 실질적인 도구가 된다.
사회적 투자 수익률(SROI·Social Return on Investment) 관점에서 보면 이 파트너십 모델의 강점이 더욱 선명해진다. 개별 기업이 각자 교육 관련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벌이면 중복 투자가 생기고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렵다. 반면 칸아카데미라는 단일 플랫폼에 복수의 파트너가 집중 투입되면 자원이 집적되고 성과가 누적되며, 학습자 수, 학습 완료율, 성적 향상 같은 측정 가능한 교육 지표로 환산된다. 각자 흩어진 자원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집결시키는 구조 설계, 그 자체가 칸아카데미 비즈니스 모델의 본질이다.
국내 교육 현장도 같은 구조적 질문 앞에 서 있다. 교육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민간 에듀테크 기업, 대기업 재단이 각자 별도의 플랫폼과 콘텐츠를 운영하는 현재 구조에서는 자원이 분산되고 학습자는 여러 플랫폼을 오가야 한다. 공공기관의 신뢰성과 민간 기술력, 기업 재단 자원이 단일 거버넌스 아래 결합되는 구조로 전환된다면, 같은 예산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교육 성과의 폭이 달라진다.
듀오링고와 칸아카데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한다. 교육 공공성을 어떻게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듀오링고는 게이미피케이션과 데이터 설계로 자체 수익 구조를 만들고, 그 수익이 무료 학습자의 접근성을 지탱하는 자립형 모델을 택했다. 플랫폼이 성장할수록 사회적 임팩트도 함께 커지는 구조로, 수익 내재화가 핵심 전략이다.
칸아카데미는 방향이 다르다. 비영리 구조가 만들어낸 신뢰를 바탕으로 글로벌 빅테크, 민간 재단, 정부를 파트너로 끌어들이고, 각자 핵심 역량이 하나의 교육 인프라로 집적되는 생태계형 모델로 작동한다. 수익을 내는 대신 명분이 투자를 부르는 구조이고, 그 투자가 플랫폼을 키우는 선순환이 작동한다. 접근 방식은 달랐지만 두 모델 모두 교육 공공성을 선언이 아닌 작동하는 구조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이 교육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려 한다면,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설계하고, 파트너의 자원이 중복 없이 집적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며, 투입한 자원이 측정 가능한 교육 성과로 전환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교육의 문턱을 낮추는 것은 착한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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