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아이를 품기 전, 먼저 지쳐간다는 말이 나온다. 아이를 만나기 위해 입양 절차를 밟는 예비부모들이 하는 이야기다. 수차례 상담을 받고, 교육을 이수하고, 가정환경 조사를 마친 뒤에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채 몇 달씩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아이를 만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누구도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도입한 공적입양체계가 정작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을 끝없는 심사와 대기 속에 묶어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했으며, 아동의 사생활 보호와 가족 구성원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인적사항 일부를 익명 처리했습니다.)
◇ 아이보다 절차가 먼저인 행정의 역설
지난해 7월 국내 입양은 민간기관 중심 구조에서 국가 주도의 공적입양체계로 전환됐다. 입양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국가가 보다 책임 있게 입양 과정을 관리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제도 시행 이후 현장에서는 기대와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절차는 늘었지만 속도는 느려졌고, 관리 강화라는 이름 아래 입양 과정 전반이 과도하게 세분화되면서 오히려 국내입양 자체가 멈춰 섰다는 것이다.
실제 예비입양부모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자격심의 단계다. 이 과정에서는 입양 신청서와 범죄경력 조회, 건강진단서, 소득증빙 등 20개가 넘는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서류를 모두 제출하고도 자격심의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예비입양부모는 수개월 동안 같은 취지의 보완 요구를 반복적으로 받으며 심사가 지연됐다고 호소했다. 이미 제출한 내용을 다시 설명하고, 추가 자료를 요구받고, 다시 보완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건 ‘기준의 불명확성’이다.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명확한 설명 없이 추가 자료 제출 요구만 이어지다 보니 언제 심사가 끝날지조차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입양을 준비 중인 부모들 사이에서는 “자격심의가 아니라 끝없는 검증 과정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현 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자격심의에 대해 “결격 사유 확인이면 끝날 일”이라며 “서류가 갖춰졌는지 확인하는 수준이면 될 절차가 지나치게 확대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현재 자격심의와 결연심의 구조를 두고 “예비입양부모 입장에서는 지옥문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부모들이 특히 부담을 느끼는 부분은 희망 조건을 둘러싼 반복 질문이다. 예비입양부모들은 입양 신청 과정에서 자신들이 감당 가능한 아이의 연령과 상황 등을 기재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 부모들은 심의 과정에서 “왜 12개월 미만 아이만 원하느냐”, “왜 더 큰 아이는 안 되느냐”는 식의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았다고 말한다. 자신들의 양육 여건과 경험을 고려해 판단한 기준인데, 이를 계속 설명하고 해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부담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부모가 감당 가능한 범위를 이야기하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일”이라며 “왜 그것만 원하느냐고 묻고 강요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실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국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만큼, 국가가 부모의 선택까지 심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도한 개입이라는 취지다.
◇ 문턱 넘으면 또 다른 문턱
자격심의를 통과했다고 해서 바로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음 단계인 결연심의에서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자격을 갖춘 예비입양부모와 입양대기아동을 연결하는 절차인데, 이 단계 역시 지연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 부모는 자격심의를 통과한 뒤 수개월째 결연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부모는 결연 심의가 반복 부결됐지만 정확한 사유조차 듣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불투명한 절차에 대한 불만도 크다. 심사 결과가 왜 보류됐는지, 왜 다른 가정이 우선됐는지, 자신의 순서는 어느 정도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입양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받고 심판받는 느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김 의원 역시 이 같은 구조를 문제 삼았다. 그는 “결연 결과 통보는 문자 하나 먼저 보내면 되는 일인데 왜 그렇게 못 하느냐”며 “기본적인 행정 처리조차 지나치게 느리고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지연이 단순히 부모들의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월령도 함께 높아진다. 당초 생후 12개월 미만 영아였던 아이가 절차 지연으로 18개월, 24개월이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더 큰 아이도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부모들에게 돌아오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김 의원은 “국가가 일을 늦춰 아이들을 연장아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가 제때 입양을 진행하지 못해 아이들의 나이만 높여놓고, 그 부담을 다시 예비부모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장의 불만은 결국 제도의 본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공적입양은 국가가 보다 책임 있게 아이를 보호하고 가정으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국가가 책임을 지기보다 절차와 심사만 늘리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김 의원은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가정으로 보낼지 고민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흠을 찾아낼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공적입양체계는 지금, ‘국가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더 많은 절차와 더 높은 문턱을 만들어낸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를 가정으로 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 오히려 아이와 부모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린 행정의 대가는 단지 기다리는 부모들만의 몫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 시간 동안에도 자라고 있다. 입양이 지연되는 사이 흘러가는 시간은 아이들의 성장과 애착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골든타임’과 직결된다. 결국 지금의 병목이 가장 먼저 앗아가는 것은, 부모의 인내가 아니라 아이들의 시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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