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옛 양조장이 ‘힙한 공원’으로…술며드는 공간, 국순당 ‘박봉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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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물류 창고로 쓰인 낡은 건물이 다목적홀 풍류정으로 재탄생했다. 박봉담은 1주년을 맞아 지난달부터 국순당 우리술 헤리티지 전시와 도슨트 투어 등 고객 체험형 프로그램을 새롭게 선보였다. /방금숙 기자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20년간 불이 꺼져 있던 옛 국순당 화성양조장에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주 ‘백세주’가 태어난 이곳은 지난해 2월, 술 복합문화공간 ‘박봉담’으로 재탄생하며 개관 1주년을 맞았다.

이 공간이 내세운 정체성은 ‘공장’이 아닌 ‘공원(PARK)’이다. 이름 역시 공원을 뜻하는 ‘파크(PARK)’와 지역명 봉담을 결합했다.

국순당 관계자는 “기존 양조장이 제품을 만드는 생산 시설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와 소통하며 관계를 맺는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봤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적인 격자문의 천장과 나무, 통유리창으로 디자인된 카페 내부. 술 글자가 새겨진 곳이 테이스팅룸이다. /방금숙 기자건물 사이의 중앙 정원이 개방감과 계절감을 살렸다. 내부에서도 분홍색 진달래꽃과 함께 봄을 느낄 수 있다. /방금숙 기자

박봉담은 2년여에 걸쳐 공간 설계 단계부터 ‘콘텐츠’를 함께 녹여낸 프로젝트다.

1만3200㎡(약 4000평) 규모 부지에는 카페 겸 레스토랑(키친)과 연구소, 수제양조장, 스마트팜, 보틀샵이 유기적으로 배치됐다.

입구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은 ‘풍류정’이다. 과거 물류 창고로 쓰이던 건물의 외관과 기둥을 그대로 살려 다목적홀로 탈바꿈시켰다. 낡은 굴뚝은 조형물로 변신했고, 해체 과정에서 나온 자재들은 담장과 조경석으로 재활용됐다.

돌계단을 오르면 생산공장으로 쓰였던 큰 건물 두 개와 연구소가 나온다. 과거의 생산 라인의 흔적은 디자인 요소로 설계됐다. 천장에 남은 자재 인양구 구멍은 반복적인 패턴으로 확대됐고, 녹물이 떨어지며 생긴 바닥의 흔적조차 공간의 역사로 남았다.

전문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과거 양조 설비와 공간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는 방문객들. /방금숙 기자

박봉담의 진가는 ‘헤리티지 투어’에서 드러난다. 1980년대 양조 노트, 누룩 제조기, 여과기 등 옛 유물을 따라 걷다 보면 현재와 과거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1층 양조시설 외벽은 유리로 시공해, 창 너머로 발효 탱크 안에서 술이 익어가는 과정이 그대로 보인다.

박봉담양조장에서는 연구원들이 직접 참여해 실험적인 술을 빚는다. 200~300L 규모 소형 탱크를 활용한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연간 100종 이상의 술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이곳에서 만난 신우창 국순당 연구소장은 우리 술의 본질을 ‘복합성의 질서화’라고 말했다.

신 소장은 “일본 술이 단일 균주를 써서 심플하다면, 우리 술은 수천 개의 미생물이 상호작용하며 만드는 깊고 복잡한 풍미를 만든다”며 “이 복합 미생물 군집을 질서 정연하게 통제해 최상의 맛을 끌어내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라고 했다.

신우창 국순당 연구소장이 박봉담의 공간과 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 소장은 ‘한줌의 쌀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다’는 철학을 갖고 국순당에서 27년째 술을 빚고 있다. /방금숙 기자

그는 박봉담 막걸리에 담긴 특별한 서사도 풀어놨다. 개발 당시 코드명은 ‘화양연화’. 발효 과정 중 향기가 폭발적으로 피어오르는 전성기의 순간을 포착해 제품화했다는 것.

신 소장은 “술을 마시며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을 떠올리고 이야기 나누길 바랐다”며 “술은 이제 단순한 액체를 넘어 취향과 서사를 공유하는 매개체가 됐다”고 말했다.

‘수제 생백세주’도 만날 수 있다. 백세주가 처음 태어난 이곳에서 화성 지역 쌀과 국순당의 발효기술로 다시 빚어냈다. 살균 처리를 거치지 않아 일반 백세주보다 한층 산뜻하고 풍부한 과실 향이 난다.

현대적인 스테인리스 발효 탱크 시설을 통해 우리 술이 과학적으로 익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방금숙 기자

양조전용쌀인 설갱미로 만든 수제맥주 ‘박봉담쌀맥주’ 역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박봉담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경계의 해체’다. 한쪽에서는 막걸리가 발효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쌀맥주와 IPA가 동시에 만들어진다. 바로 옆 키친에서는 막걸리 효모로 만든 술빵 샌드위치, 우유와 쌀을 결합한 타락죽, 버터헤드 쌈 샐러드가 나온다.

메뉴에 쓰이는 채소는 부지 내 스마트팜 ‘팜업’에서 직접 재배한다.

국순당 관계자는 “쌀로 술을 빚는 기업은 결국 농업에서 출발한다”며 “스마트팜은 술의 원재료가 음식과 경험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완성하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박봉담 자체 스마트팜에서 직원들이 수경 재배 채소를 관리하고 있다. /방금숙 기자

2층 테이스팅룸에서는 통창 너머로 산과 눈높이를 맞추고 하이엔드 오디오 드비알레의 사운드를 곁들여 술을 음미할 수 있다. 다양한 술을 비교하며 취향을 발견하는 공간이다. 보틀샵에서는 전통주뿐 아니라 와인 등 800여종 술을 판매한다.

박봉담은 주말 하루 평균 1500명, 많게는 2000명 가까운 방문객이 찾는다. 연간 방문객은 약 15만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공장지대라는 입지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수원과 서울 근교에서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자리했다.

1주년을 맞은 박봉담은 새로운 실험을 이어간다. ‘술을 빚는 공간, 문화를 빚는 공간이 되다’라는 콘셉트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박봉담 양조장에서 만든 신선한 막걸리와 수제맥주 샘플러. 술과 음식을 넘나드는 미식을 경험할 수 있다. /방금숙 기자

전통주 테이스팅, 양조 체험, 와인 클래스 등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확대하고, 일부 공간은 백세주를 빚는데 사용했던 설비 전시, 문화 이벤트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다양한 무알코올·저알코올 제품도 개발 중이다.

신 소장은 “박봉담에서 제시하는 기준은 우리 술이 문화로 확장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단맛이나 도수에 치중하는 게 아닌, 가스트로노미(음식과의 조화) 속에서 인정받는 우리 술의 진짜 가치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박봉담 양조장 외관. /방금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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