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재외선거의 접근성 문제가 반복되면서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 ‘비대면 투표’다. 해외 어디에 있든 우편이나 전자 방식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물리적 거리와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이 방식은 또 다른 논쟁을 불러온다. 투표소라는 통제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보안과 비밀투표 보장 등 선거의 기본 원칙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 OECD 국가, 비대면 투표 병행… 국회, 우편·전자투표 도입 논의
비대면 투표의 쟁점은 분명하다. 투표 참여를 확대하는 선택이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느냐다. 전자투표의 경우 해킹이나 시스템 오류 가능성이 존재하고 우편투표는 분실이나 대리 기표 우려가 있다. 접근성을 넓히는 만큼 통제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현재 비대면 투표 도입 논의는 이미 입법 단계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는 재외국민이 거주지에서 기표한 뒤 우편으로 회송하는 방식의 재외거소투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공관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현행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고 재외국민의 투표 참여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또 일부 법안은 전자투표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까지 포함하고 있다. 블록체인 등 기술을 활용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투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재외투표소를 확대하는 방안도 병행 논의되고 있지만, 이는 기존 방식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처럼 재외선거 논의는 ‘어디서 투표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로 변화하고 있다.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 전환이 본격적으로 검토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이런 변화는 단순한 편의성 확대보다 선거의 기본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쟁의 강도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비대면 투표가 재외선거의 주요 방식으로 자리 잡은 국가들이 적지 않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OECD 다수 국가는 우편투표나 전자투표, 대리투표 등 다양한 방식을 병행하며 재외국민의 투표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 등은 우편투표를 통해 재외국민이 거주지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대리투표를 허용해 접근성을 보완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경우 인터넷 투표를 도입해 재외국민뿐 아니라 전체 유권자가 온라인으로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투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재외선거를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의 문제’로 접근했다는 데 있다. 물리적 제약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 더 많은 유권자가 실제로 투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재외선거를 형식적 권리 보장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참여로 연결시키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해외 사례는 동시에 비대면 투표가 안고 있는 한계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편투표의 경우 배송 지연이나 분실, 대리 기표 가능성 등 물류와 관리 측면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전자투표 역시 해킹이나 시스템 오류, 데이터 변조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술적 보완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비밀투표 원칙 역시 중요한 쟁점으로 꼽힌다. 투표소에서는 유권자의 선택이 보호되지만, 가정이나 개인 공간에서는 외부의 영향이나 압력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 가족이나 주변인의 개입, 조직적인 압력 가능성 등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대면 투표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사후적으로 확인하거나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논쟁의 핵심으로 지적된다.
비대면 투표 논의는 접근성과 공정성 사이의 균형 문제로 귀결된다. 참여를 확대할수록 통제는 어려워지고, 통제를 강화할수록 참여는 제한되는 긴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비대면 투표 도입은 편의성뿐 아니라 △보안성 △비밀투표 보장 △선거관리의 투명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투표 방식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선거 제도 전반의 신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가 핵심이라는 의미다.
재외선거는 이제 또 다른 갈림길에 서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꿀 것인지, 기존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무게를 둘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요구된다.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두 가치를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제도 설계가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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