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대형 프리미엄 SUV 영역은 아직 뚜렷한 기준이 없는 상태다. 내연기관 시대에는 브랜드의 플래그십 SUV가 곧 기술력의 상징이었다. 전동화 이후에는 그 역할을 무엇이 대신할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볼보가 차세대 순수 전기 플래그십 SUV 'EX90'을 통해 던진 질문은 이 지점에 있다. 전기 SUV 한 대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플래그십 SUV의 성격 자체를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다. 배터리 용량이나 가속 성능보다 차량 구조와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중심에 둔 접근이다.
최근 글로벌 완성차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영역도 바로 이 부분이다. 자동차가 기계 중심 제품에서 소프트웨어 중심 제품으로 이동하면서 차량 개발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차량 기능을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통합하고, 출시 이후에도 업데이트를 통해 성능과 기능을 확장하는 구조가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볼보 EX90의 핵심은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Software Defined Vehicle, SDV)'라는 개념이다. 차량의 주요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제어하는 차세대 전자 아키텍처가 적용됐고, 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과 성능이 계속 진화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차량 내부 구조 역시 이런 방향에 맞춰 설계됐다. 전기 아키텍처와 코어 컴퓨터, 존 컨트롤러를 통합한 '휴긴 코어(Hugin Core)'가 차량의 중심 역할을 맡는다. 다양한 센서와 시스템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안전 기술과 주행 보조 기능을 발전시키는 구조다.
볼보가 EX90에서 강조하는 안전 기술도 같은 흐름 속에 있다. 브랜드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충돌 안전 개념이 이제 데이터 기반 예방 기술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차량에는 카메라 5개, 레이더 5개, 초음파 센서 12개로 구성된 센서 세트가 적용된다.
이 센서들은 도로 상황뿐 아니라 차량 내부 상태까지 감지한다. 운전자의 집중 상태를 분석하는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과 실내 승객 감지 시스템도 포함됐다. 어린이나 반려동물이 차량 안에 남겨지는 상황을 감지해 사고 가능성을 줄이는 기능이다.

전기차 성능 측면에서도 플래그십 SUV에 맞는 구성이 적용됐다. EX90은 106㎾h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트윈 모터 사륜구동 시스템을 사용한다. 최고출력 456마력의 트윈 모터 모델과 680마력의 퍼포먼스 모델이 마련됐고, WLTP 기준 최대 주행거리는 625㎞다.
충전 시스템 역시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흐름을 반영한다. 800V 배터리 시스템을 기반으로 급속 충전 시 10%에서 80%까지 약 22분이 걸린다.
가격 전략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국내 판매 시작가는 1억620만원으로 책정됐다. 기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플래그십 SUV인 XC90 T8보다 낮은 수준이다. 플래그십 전기 SUV의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 전동화 전환을 가속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대형 전기 SUV 시장은 아직 절대적인 기준 모델이 없는 영역이다. 브랜드마다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특징이다. 어떤 브랜드는 성능을 강조하고, 어떤 브랜드는 럭셔리를 앞세운다.

EX90의 접근 방식은 조금 다르다. 전기 SUV의 성능 경쟁에 집중하기보다 차량 구조 자체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앞으로 출시될 볼보 전기차들이 같은 기술 구조를 공유하게 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EX90은 단일 모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윤모 볼보자동차코리아 대표는 "EX90은 볼보자동차가 약 100년간 쌓아온 안전 헤리티지와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최고 수준의 기술이 완벽하게 결합된 상징적인 모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볼보자동차코리아는 단순히 전동화로의 전환을 넘어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SDV) 시대에 타면 탈수록 더 똑똑해지고 안전해지는 새로운 차원의 스웨디시 프리미엄 가치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플래그십 SUV는 항상 브랜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모델이었다. 내연기관 시대에는 엔진과 섀시 기술이 그 역할을 했다. 전동화 시대에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EX90은 바로 그 변화의 방향을 먼저 보여주는 모델이다. 전기차 경쟁이 배터리와 주행거리 중심에서 차량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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