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30대 청년의 ‘비혼’, 돌봄이 만든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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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사실 비혼을 결심하게 된 건 엄마 때문이야. 파킨슨병 앓고 계신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고 결혼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그렇다고 그 부담을 누군가랑 나누는 건 이기적인 것 같더라. 요즘 같은 세상에 그걸 이해해줄 사람을 만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최근 한 청년 커뮤니티에서 만난 가족돌봄청년의 말이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며 연애 대한 마음이 다시 움트지만,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쉽게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올해 32세가 된 그가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통한 방문요양 서비스가 사실상 전부다. 그나마 이 서비스 덕분에 근무 시간만큼은 마음을 놓을 수 있지만, 일이 끝난 이후의 엄마 돌봄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연애를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삶은 그에게 여전히 ‘먼 이야기’다.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암 수술을 받은 누나와 타지에서 생활하는 여동생, 그리고 돌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아버지 사이에서 그는 사실상 홀로 장남의 역할을 떠맡고 있었다. 가족을 향한 마음이 클수록, 그에게 주어진 건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이었다.

이 청년의 삶을 우리는 과연 ‘개인 선택의 결과’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부모와 그들의 아픔, 그리고 가족의 사정까지. 개인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조건 속에서 그가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는 것’뿐일지 모른다. 돌봄의 책임이 여전히 개인에게 머무는 한, ‘비혼’을 선택하는 청년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위기아동청년법)과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이 오는 27일 시행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의 현실이 당장 크게 달라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위기아동청년법’은 청년을 만 34세 이하로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의 지원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가족돌봄청년을 전담 지원하는 청년미래센터의 경우, 지원 대상을 가족 돌봄을 ‘전담’하는 청년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다른 장년(35~64세) 가구원이 없을 것을 조건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통합지원법’은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돌봄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기존 제도와의 차별성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돌봄 측면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통한 방문요양 서비스와 비교했을 때, 요양보호사가 일정 시간 방문해 돌봄을 제공하고 돌아가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돌봄 공백 시간은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게 되는 건 다르지 않다.

부모의 아픔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렇기에 이 청년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여전히 제도의 틈 사이에 머물러 있다. 청년이 가족을 돌본다는 이유로 사랑과 미래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 무게를 국가가 함께 짊어질 때 비로소 이 청년들에게 결혼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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