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소현 기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가를 ‘캐스팅보트’ 국민연금이 사실상 최윤범 회장 체제에 등을 돌렸다. 국민연금이 회사 측이 내세운 이사 후보 전원에 대해 찬성표를 던지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오는 주주총회는 현 경영진의 적격성을 심판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 “단 한 명도 지지 안 해”… 국민연금의 이례적 ‘싸늘한 행보’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는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 안건과 관련해 최윤범 회장을 포함한 회사 측 후보자들에 대해 단 한 명의 찬성 의결권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상대 진영인 영풍·MBK 파트너스 측 후보 3명에 대해서는 ‘찬성’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중립’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국민연금이 회사 측 후보 전원에게 찬성하지 않은 것은 현 경영진의 의사결정 방식과 거버넌스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판단한 시그널”이라며 “사실상의 불신임 투표나 다름없다”고 분석했다.
◇ 감사위원 후보엔 ‘명시적 반대’… 거버넌스 리스크 정조준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회사 추천 감사위원 후보 2명에 대한 ‘반대’ 표명이다. 국민연금은 반대 사유로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를 명시했다. 이는 고려아연의 내부 감시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공적 기관이 공식 확인해 준 셈이다.
이러한 기류는 앞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한국ESG기준원(KCGS)이 내놓은 권고안과 맥을 같이 한다. 이들 기관은 자사주 매입 후 유상증자 추진, 이사회 승인 없는 대규모 투자 등을 거론하며 고려아연의 통제 시스템 실패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국민연금까지 이 대열에 합류하면서 최 회장 측은 도덕성과 적격성 모두에서 거센 압박을 받게 됐다.
◇ 단순 분쟁 넘어 ‘지배구조 정상화’ 국면으로
영풍과 MBK 파트너스 측은 국민연금의 결정을 반기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양측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고려아연의 의사결정 구조와 감사 기능이 주주권익 보호라는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주총을 통해 훼손된 거버넌스를 바로잡고 기업 신뢰를 회복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주총은 누가 더 많은 지분을 가졌느냐의 싸움을 넘어, ‘누가 더 투명하게 회사를 운영할 적임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귀결되고 있다. 국민연금이라는 거대 우군을 잃은 최 회장 측이 남은 기간 어떤 논리로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이번 사태의 마지막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