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환율이 1500원대까지 치솟으면서 고환율이 반복되자, 면세업계가 60년간 유지해온 ‘달러 가격표’를 떼고 원화로 표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한국면세점협회는 상품 가격을 원화로 고정하는 ‘원화 표시제’ 도입을 위한 실무 검토에 착수했다. 환율 급등으로 면세점 물건값이 백화점보다 비싸지는 ‘가격 역전’ 현상이 일상이 되자, 원화로 가격을 고정해 무너진 가격 경쟁력을 강제 회복하겠다는 취지다.
실제 지난 1월 면세점 매출은 1조708억원으로 전년 대비 소폭 늘었지만 외국인 객단가(평균 구매액)은 약 10% 이상 감소했다. 개별 관광객(FIT) 중심으로 소비 구조가 재편되며 지출 규모가 줄어든 데다, 고환율 탓에 면세점 대신 올다무(올리브영·다이소) 등 저렴한 로드숍으로 발길을 돌린 영향이다.
여기에 1400~1500원대를 오가는 환율 장벽이 결정타가 됐다.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2023년 1288원, 2024년 1472원, 지난해 1439원 등 높은 수준을 이어왔고, 최근에는 중동 정세 영향으로 1500원대를 넘어서며 부담은 더욱 커졌다.
면세점 관계자는 “과거 면세점은 백화점보다 최소 10~20% 저렴하다는 인식이 확고했지만, 지금은 환율이 조금만 튀어도 가격 우위가 사라진다”며 “면세 메리트가 환율 상승분에 상쇄되면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백화점이나 로드숍으로 발길을 돌리는 흐름이 뚜렷하다”고 진단했다.
그간 정부와 면세점은 외화 획득이라는 정책적 목적 아래, 환율 상승 시 판매가가 함께 올라 환리스크를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경영상 이점 때문에 달러 표시제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60년간 유지된 이 ‘달러 방어막’은 환율 1400~1500원대가 고착화되며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가격 부담을 느낀 소비자가 아예 지갑을 닫자, 업계는 일부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원화 전환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관건은 60년 묵은 시스템의 전면 개편이다. 국내 면세 인프라 자체가 달러 결제를 기반으로 설계된 탓에, 원화 체계로의 전환에는 막대한 전산 비용과 시간이 투입돼야 한다. 공급사와의 가격 정책 역시 원점에서 재설계가 불가피하다.
‘환리스크 독박’ 우려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원화 가격을 고정하면 환율이 급등해도 판매가에 즉각 반영할 수 없다. 반면 면세점은 해외 브랜드 상품을 달러로 매입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를수록 원가 부담만 불어난다. 입점 브랜드는 대금을 달러로 받아 손해가 없지만, 환차손과 마진 감소는 온전히 면세점이 떠안게 되는 구조다.
그럼에도 면세업계는 원화 가격제 도입이 고환율에 닫힌 외국인 지갑을 열고, 내국인의 해외 소비를 안방으로 돌려놓는 결정적 카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면세점 관계자는 “원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면세점 가격이 올라가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경쟁력 확보가 불가능하다”며 “달러 가격제가 그동안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던 만큼 영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필요하지만, 해외 주요국 사례를 보면 충분히 추진할 만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글로벌 주요 면세 시장은 이미 자국 통화 중심 가격 체계로 환율 변동 리스크를 방어 중이다.
일본은 엔화(JPY) 고정가를 기반으로 엔저 시기 쇼핑 특수를 누렸고, 유럽과 중국 하이난 역시 각각 유로(EUR)와 위안화(CNY) 표시제를 통해 소비자를 유인하고 있다. 한국만 달러에 묶여 고환율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면세점협회 관계자는 “현재 업계 의견을 모으는 초기 단계로, 구체적인 영향 분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며 “시스템 전환에 따른 비용과 실효성, 향후 환율 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