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전기가 부족하면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게 오랜 상식이다. 하지만 가장 경제적인 해법은 발전소를 짓는 게 아니라 필요한 시간에 전기 사용을 조금씩 줄이는 것이다. 1kW를 새로 생산하려면 발전소 건설비, 연료비, 탄소 배출 비용이 모두 들지만, 1kW를 아끼면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
미국의 옴커넥트(OhmConnect)는 바로 이 절약된 전력을 거래하는 회사다. 발전소는 전기를 만들어 팔지만, 이 회사는 안 쓴 전기를 모아서 판다. 앞서 상편에서 다룬 넥스트 크라프트베르케가 작은 발전소들을 묶어 큰 발전소처럼 만들었다면, 여기서는 각 가정이 아낀 전기를 모아 발전소가 만든 전기처럼 거래한다.
수익 구조는 명확하다. 전력 수요가 급증해 전력망에 과부하가 예상되는 시간이 되면 가입자들에게 알림을 보낸다. 회사는 이 시간을 옴아워(OhmHour)라고 부르는데 옴(Ohm)은 전기 저항 단위에서 따온 말이고 절약이 필요한 한 시간을 뜻한다. 지금 한 시간 동안 전기를 아껴달라는 요청이다.
가입자는 세탁기 사용을 미루거나 에어컨 온도를 1~2도 높이는 식으로 참여한다. 스마트미터를 통해 각 가정이 평소보다 얼마나 전기를 덜 썼는지 측정하고 그만큼 현금이나 포인트로 보상한다. 한 가정이 아끼는 전력은 적지만, 수십만 가구가 동시에 참여하면 대형 발전소 하나가 만드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개별 가구는 작지만 수십만 가구를 묶어 전력 시장에서 협상력이 생긴다.
이렇게 모은 절약 전력을 전력 거래 시장에 판다. 전력 회사는 피크 시간대에 노후 발전소를 급하게 가동하는 대신 수요 감축을 요청하고 비용을 지불한다. 수익의 약 80%는 가입자에게 나눠주고, 나머지 20%를 회사가 가져간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거래 비용 문제를 플랫폼이 해결한 사례다. 전통적으로 전력 회사는 대형 공장이나 상업 시설에만 피크 시간대 전력 사용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개별 가정은 절약량이 너무 작아서 일일이 계약하고 측정하는 비용이 더 컸기 때문이다.
옴커넥트는 디지털 기술로 측정과 정산을 자동화하면서 개인 가구까지 시장에 참여시켰다. 스마트미터와 IoT(사물인터넷) 센서로 각 가정의 전력 사용 패턴을 실시간 추적하고, AI(인공지능)로 절약 가능량을 예측한다.
발전소나 송전망을 하나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발전소를 짓는 데는 수천억 원이 들고, 건설 후에도 유지보수 비용이 계속 발생한다. 반면 데이터 플랫폼과 고객 네트워크만으로 전력망의 균형을 맞춘다.
물리적 자산 없이 조정 능력만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자산을 직접 소유하지 않고 네트워크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경영학에서는 자산 경량화 전략이라고 부른다. 우버가 차를 소유하지 않고, 에어비앤비가 건물을 소유하지 않는 것과 같은 논리다.
성공 요인은 행동 설계에 있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추상적 메시지는 실천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반면 전기를 아껴서 현금을 벌고 경품 추첨에 참여하라는 구체적 제안은 즉각 반응을 이끌어낸다.
미션 성공 횟수에 따라 다이아몬드, 골드 같은 등급을 매기고 리더보드를 운영한다. 절약한 전력량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해 보여주고 적립 포인트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에너지 절약을 게임처럼 만들면서 참여율을 높였다.
사람들은 장기적 이익보다 즉각적 보상에 반응하고, 추상적 가치보다 구체적 성과에 동기를 느낀다. 이런 심리를 활용해 보상 시스템을 설계했고, 결과적으로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냈다. 윤리의식이 아니라 경제성으로 행동을 바꾼 것이다.
환경적 효과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전력 피크 시간대에 가동되는 노후 화석연료 발전소를 피커 발전소(Peaker Plant)라고 부르는데, 가동 비용이 비싸고 탄소 배출량도 높다. 수요를 줄이면 피커 발전소 가동이 줄어들고, 탄소 배출이 감소한다.
동시에 가계에는 부가 수익을 제공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기준으로 가입 가구는 연평균 100~300달러(약 14만~42만 원)의 추가 수익을 얻는다. 특히 저소득층에게는 전기를 아껴서 돈을 번다는 경험이 에너지 효율에 대한 인식까지 바꾼다.
옴커넥트는 2010년 설립 이후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약 50만 가구 이상을 연결했다. 누적 절감 전력량은 약 1000GWh(기가와트시) 수준이고, 탄소 배출 감축량은 약 50만 톤에 달한다. 대형 발전소 여러 기를 짓지 않고도 동일한 효과를 냈다.
2021년에는 프랑스 에너지 대기업 엔지(Engie)의 자회사에 인수되며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가정용 스마트 기기뿐 아니라 전기차 충전기, 태양광 패널, 가정용 배터리까지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으로 진화 중이다. 수요 감축만이 아니라 분산 저장과 공급까지 아우르는 종합 에너지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가전 보급률과 통신 인프라를 갖췄다. 하지만 여전히 에너지 효율은 기기의 성능 개선에만 치우쳐 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가전 대기업은 이미 수백만 대의 스마트 가전을 보급했고, IoT 플랫폼도 구축했다.
제조사가 에너지 소비가 적은 냉장고를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기기들을 네트워크로 묶어 전력망에 유연성을 공급하는 서비스 사업자로 진화할 수 있다. 거실의 에어컨, 주방의 냉장고가 전력을 소비만 하는 제품을 넘어 전력망 안정성을 지탱하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전력공사도 수요 관리형 요금제를 시범 운영 중이지만 아직 대형 사업장 중심이고 개인 가구의 참여는 제한적이다. 즉각적 보상 시스템과 게임화 요소를 도입하면 참여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공급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서 수요 관리 중심의 비즈니스로 이동하는 것, 그 과정에서 소비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끄는 인센티브를 설계하는 게 국내 기업이 직면한 과제다.
넥스트 크라프트베르케와 옴커넥트는 에너지 유연성을 수익화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접근 방식은 정반대다. 전자는 공급측에서 작은 발전소를 묶어 큰 발전소처럼 만들었고, 후자는 수요측에서 각 가정의 절약을 모아 발전소가 만든 전력처럼 거래했다. 생산을 통합한 것과 소비를 조정한 것의 차이다.
두 회사 모두 물리적 자산 없이 데이터와 네트워크로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발전소를 짓는 대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전기를 파는 대신 유연성을 판다. 자산을 소유하는 대신 조정 능력을 확보하면, 에너지 시장의 새로운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에너지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설계의 문제다. 공급과 수요 양쪽에서 흩어진 자원을 연결하고 유연성을 가치로 전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과 미국의 사례는 자산 없이도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고, 국내 기업도 조정과 연결의 가치를 설계할 때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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