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복수 국가에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응하기 위한 군함 파견을 요구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를 공급받는 국가들이 직접 나서서 공동으로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안보 무임승차’를 반대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파병’을 요구한 가운데, 우리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중국, 프랑스 일본, 영국 등을 지목해 “미국과 협력해 군함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 국가명을 거론하지 않은 국가를 포함하면 총 7개 국가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다. 그는 “인위적인 제약으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이 이 지역에 함정을 보내 완전히 지도부가 제거된 국가가 더 이상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에 대한 명분으로 각국의 ‘책임’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또 다른 게시물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수입하는 세계 각국은 그 항로를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그간 동맹국에 대해 ‘안보 무임승차’를 지적했던 것을 중동 상황에 까지 대입하고 나선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워싱턴DC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참여 여부를 기억하겠다는 취지로 언급하며 노골적인 압박을 이어갔다.
청와대는 일단 한미 간 소통할 사안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거듭된 압박에 편치만은 않은 모습이다. 더욱이 미국 행정부가 이르면 이번 주 중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 구성을 발표할 계획이라는 외신 보도까지 나오면서 청해부대 투입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청와대는 이에 대해서도 “정확한 진의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며 거리를 뒀다. 미국의 입장이 우선 전달돼야 한다는 것이다.
◇ ‘신중론’ 유지하는 정부
미국의 군함 파견 요구가 사실상 이란을 둘러싼 군사 작전에 참전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마냥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한미동맹 신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이 딜레마다. 관세 문제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 양국 간 얽혀있는 현안이 많다는 점도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같이 거명된 다른 국가들의 선택을 지켜볼 것으로 전망된다.
군함을 파견한다고 하더라도 ‘우회적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난 2020년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으로 파견했던 방식이다. 당시 이란과의 긴장이 고조됐던 미국 정부는 한국에 호르무즈 호위 연합인 ‘국제해양안보구상(IMSC)’ 참여를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해당 연합에 참여하지 않고 청해부대의 작전 구역을 호르무즈 인근까지 확대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독자 파병 형태를 취해 중동 상황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는 ‘절충점’을 선택한 것이다.
우회적 방식을 취한다 해도, 파병이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국내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는 또 다른 난제다. 당장 정치권 안팎에서는 호르무즈 파병을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 “파병 요구는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요구”라고 날을 세웠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적극적으로 파병에 동의하는 건 반대”라며 “복합적으로 신중히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 비준’ 여부도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0년 당시에는 ‘유사시 작전 범위를 확대’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비준을 받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데다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 작전에 참여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게 과거와는 다르다는 지적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본래 파병 목적을 변경하는 군사 행동인 만큼,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헌법상 절차를 무시하고 결정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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