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쇼핑의 납품업체 거래 관행에 제동을 걸면서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이른바 ‘유통 갑질’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대금 지연과 부당 반품 등 대형 유통사의 반복되는 불공정 거래를 줄이려면 징벌적 과징금은 물론 특약매입 등 독소적 거래 방식을 규제하는 가이드라인의 의무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전날 롯데쇼핑 마트부문이 납품업체와 거래하면서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억69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롯데쇼핑은 납품업체에 계약 서면을 최장 201일이나 늦게 교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법정 기한을 넘겨 상품 판매대금을 지급하거나 지연 이자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사례가 확인됐다. 이와함께 직매입 방식으로 납품받은 상품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반품하거나 종업원 파견 약정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납품업체 직원이 매장에서 근무하도록 한 사실도 적발됐다. 공정위는 이러한 행위가 대규모유통업법이 금지한 불공정 거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 같은 사례가 특정 기업의 일탈이라기보다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힘의 격차’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사가 거래 조건을 주도하는 구조에서 납품업체가 비용이나 위험을 떠안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특약매입’이나 ‘위탁판매’ 형식이 불공정 거래의 핵심으로 꼽힌다. 이는 유통사가 상품을 직접 매입하는 직매입과 달리 제품 판매 후 정산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납품사가 판매 부진에 따른 위험과 판촉 비용 부담을 떠안는 구조다.
공정위 실태조사에서도 이러한 거래 구조 속에서 납품업체 부담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정위가 지난해 주요 유통업체와 거래하는 납품업체 76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유통분야 납품업체 서면실태조사’에 따르면 납품업체가 경험한 불공정 행위 가운데 판촉 비용 부당 전가가 6.3%로 가장 높았으며 불이익 제공 5.9%, 특약매입 거래에서의 대금 지연 지급 4.3%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줄이기 위해 특약매입과 위·수탁 거래 등 납품업체에 비용과 판매 위험이 집중될 수 있는 거래 방식에 대한 관리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대규모유통업법이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거래를 규율하고 있지만 거래 구조별 비용 부담 기준이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특약매입 등 거래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공정위가 대형 유통기업의 납품업체 거래 관행을 제재한 사례도 이어졌다.
공정위는 2023년 GS리테일이 홈쇼핑 방송 전후 판촉행사를 진행하면서 사전에 약정하지 않은 추가 판촉비를 납품업체에 부담시킨 행위를 적발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5억8000만원을 부과했다.
같은 해 CJ올리브영에 대해서도 납품업체에 행사 독점을 강요하고 정보처리비를 부당 수취했으며 판촉행사 종료 후에도 인하된 납품가격을 정상가격으로 환원하지 않은 행위를 문제 삼아 시정명령과 과징금 18억9600만원, 법인 고발을 결정했다.
편의점 업계에서도 GS25,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가 납품업체에 과도한 미납 페널티를 부과하고 신상품 입점장려금을 받은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았으며 이후 거래조건을 개선하는 내용의 동의의결이 확정됐다. 동의의결은 기업이 자발적인 시정 방안을 제시하면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여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특정 계약 방식을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협상력 격차가 거래 구조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약매입 비중 축소 등 관련 내용 추가)
이종우 남서울대학교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공정거래법은 시장 거래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원칙인데, 이번 사례는 그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성격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롯데마트 측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관련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고 계약서 교부 지연 방지와 반품 사유 관리 강화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관련 법규를 철저히 준수하고 공정한 거래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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