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워치] 전쟁만 나면 휘발유보다 더 뛰는 경윳값, 가격역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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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표시된 유가 정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따른 중동 정세 불안 여파로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뉴시스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전쟁이 터질 때마다 기름값의 ‘익숙한 공식’이 반복되고 있다. 평소 휘발유보다 저렴했던 경유 가격이 더 빠르게 치솟으며 역전되는 현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당시 나타났던 흐름이 최근 이란 전쟁 국면에서도 되풀이 됐다. 전문가들은 전쟁 상황에서 경유 수요는 줄지 않는 반면 공급은 제한되는 구조적 특성이 가격 상승을 더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1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리터당 1929.40원으로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1905.70원)보다 1.24% 높았다. 국내 주유소 가격 구조상 일반적으로 휘발유가 경유보다 비싼 경우가 많지만, 최근 국제 유가 급등과 중동 정세 불안이 겹치면서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국제 경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같은 해 5월부터 국내에서도 경유 가격이 휘발유를 웃도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 바 있다.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경유 가격 상승폭이 더 크게 나타나는 구조적 특성이 반복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국제 시장에서도 경유 가격 상승세가 더 가파르다. 최근 싱가포르 시장 기준 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약 113달러 수준인 반면 자동차용 경유는 155달러를 넘어 약 38% 높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글로벌 평균으로도 경유 가격은 통상 휘발유보다 높은 ‘경유 프리미엄’ 구조를 보인다.

경유 가격이 더 크게 움직이는 이유는 수요 구조에 있다. 휘발유는 주로 승용차 연료로 사용돼 가격이 오르면 운행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수요 조절이 가능하다. 반면 경유는 화물 트럭과 버스, 선박, 건설 장비, 산업용 발전기 등 산업 전반에 쓰인다. 전쟁 상황에서는 군용 차량과 장비 연료 수요까지 늘어나기 때문에 소비가 크게 줄지 않는다.

공급 측면에서도 경유는 구조적으로 늘리기 어렵다. 원유를 정제하면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은 일정 비율로 생산되기 때문에 특정 제품만 생산량을 크게 확대하기 어렵다. 정제 과정 역시 경유가 휘발유보다 복잡해 생산 비용도 상대적으로 높다.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도 영향을 미친다. 세계 경유 시장에서 중간 유분 공급의 상당 부분을 걸프 지역이 담당하고 있는데, 최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와 산유국 감산 움직임이 겹치면서 공급 불안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휘발유 가격이 경유보다 더 비싸게 책정돼 있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유류세 가운데 핵심인 교통에너지환경세가 휘발유는 리터당 492원, 경유는 337.5원으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제 시장에서 경유가 더 비싸더라도 국내에서는 역전 현상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최근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이런 구조적 차이를 넘어 경유 가격 상승 압력이 더 크게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국제유가는 최근 이란 전쟁 여파로 전날 장중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등 큰 폭의 변동성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중동 정세가 안정될 경우 경유 가격 상승 압력도 점차 완화하며 경윳값과 휘발유값이 다시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같은 해 5월부터 경유 가격이 휘발유를 웃도는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났지만, 국제 유가가 안정되면서 약 9개월 뒤인 2023년 초 다시 휘발유 가격이 경유를 앞서는 구조로 돌아간 바 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전날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폭등했던 국제유가는 하룻만에 전쟁 조기 종식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안정될 수 있다는 기대가 일부 나오고 있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CBS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고 언급하면서 국제유가는 장중 급등 이후 다시 배럴당 80달러대로 내려오는 등 변동성을 보였다.

다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만큼 단기적으로는 국제 유가와 경유 가격의 변동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은 전날 서울 종로구 SK에너지 본사를 비롯해 강남구 GS칼텍스, 마포구 S-OIL(에쓰오일), 중구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공정위는 중동 전쟁으로 인한 원유 가격 상승을 빌미로 정유사들이 석유 제품 가격을 담합해 폭리를 취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제 유가 변동이 국내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약 2주가 걸리는 점과 달리, 최근 국내 유가가 공습 직후 며칠 사이 리터당 200원 가까이 급등한 배경을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정유사들이 국제 유가 상승분을 실제 비용 발생 이전부터 선반영하거나 인상 폭을 맞추는 방식으로 가격을 끌어올렸는지 여부가 조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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