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정서적 원점으로 평가받는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가 실사 영화로 옮겨졌다. 연출을 맡은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은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자신의 해석으로 빈틈을 채우고 또 과감히 비워냈다. 자신이 서 있는 30대 초반의 감정을 겹쳐 넣으며 이야기를 다시 썼다. 설명을 덜어낸 자리에는 침묵을 두고, 내레이션 대신 인물의 표정과 풍경으로 감정을 전했다.
‘초속 5센티미터’는 어린 날 추억으로부터 조금씩 다른 속도로 나아간 타카키와 아카리의 사랑과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두 인물이 각자의 속도로 멀어져 가는 과정을 담는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며 그의 애니메이션 가운데 최초이자 유일하게 실사화된 사례다.
일본 개봉 당시 16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원작자인 신카이 마코토 감독 역시 “마지막에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울면서 보고 있었다”고 밝히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마츠무라 호쿠토와 타카하타 미츠키가 타카키와 아카리를 연기했고, 요네즈 켄시가 주제곡 ‘1991’으로 참여해 세대적 감성을 덧입혔다.
연출을 맡은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은 사진과 광고, 뮤직비디오를 거쳐 장편 영화 연출로 영역을 넓혀온 창작자다. 이번 작품에서는 원작의 상징성과 감정선을 어떻게 실사로 옮길 것인지에 주목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그는 이를 ‘재현’이 아닌 ‘재해석’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원작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처음 원작을 본 것은 고등학교 때였고, DVD로 접하게 됐다. 그때는 굉장히 (영화가) 내향적이라고 느꼈다. 내향적이라는 표현을 쓰면 나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개인적이고 퍼스널한 이야기이면서 내면을 깊이 파고 들어가는데, 그것이 보편적인 것으로 이어지는, 마이크로한 것이 매크로로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요소들이 병렬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이런 작품이 있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실사를 하며 함께 일했던 스태프들과 연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누군가의 솜털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 보면 세계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보편적인 진실에 닿을 수 있는 영화면 좋겠다’고. 어떤 솜털 하나를 아주 클로즈업해 들어가다 보면 그 안에서 우주를 발견하게 되는 느낌의 영화가 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1991년이라는 설정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나.
“일단 이 이야기의 원래 설정상 타카키와 아카리가 만났던 해이고, 나와 요네즈 켄시, 그리고 타카하타 미츠키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지금 35살이 됐고 이 영화를 만들 때는 33살이었다.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Midlife Crisis)’라는 말이 있는데, 아이와 진짜 제대로 된 어른이 되는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있는 나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30대 전후의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미련도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으며, 그러한 감정들이 공존하는 시기라고 본다. 무언가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안개에 휩싸인 듯하고,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감이 많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나이대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실제로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을 당시 33살에서 34살 정도였다고 알고 있다. 지금의 30대 초반 연령대 사람들이 여럿 모여 당시 신카이 감독이 만든 작품을 실사로 그려낸다는 것은, 이 나이이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실감을 담아 만들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의 감정을 투영해 만들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세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업이 성공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원작의 상징성과 감독 본인의 해석 사이에서 어떤 기준으로 방향을 잡았나.
“이 영화를 만들 때 처음부터 정해 둔 것이 있었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내용이 사소설, 개인 소설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원작은 개인의 감정을 깊이 파고드는 부분이 있고, 나는 원작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아니지만 이것을 실사화하는 데 있어 개인의 인생을 투영하는 작업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태프들에게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원풍경(각자가 마음속에 간직한 첫 기억의 풍경이나 잊지 못하는 장면) 같은 것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이 영화 어딘가에 투영해 나가자고 이야기했다. 그런 점에서 원작이 지닌 느낌은 지키겠다고 정해 뒀다. 원작 이야기를 실사로 재구축하는 데 있어 특별히 많이 의식한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 그리고 헤어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기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평범하지만, 기적이라기보다는 만남과 이별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로 재구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카키의 세 시대가 나오는데, 그 세 시절을 이어주는 모티프가 여러 개 있다. 현재와 각각의 과거를 이어주는 모티프. ‘초속 5센티미터’라는 단어 역시 과거에 들은 적이 있고 현재와 이어지는 역할을 하며 시간을 잇는 연관성을 가진다. 어떤 모티프가 있음으로써 무언가를 반사해 다시 예전의 이야기로 돌아가게 하는 구성을 하려고 노력했다. 각본가님이 굉장히 잘 만들어줬다.”
-옴니버스식 구성을 하나로 연결할 때 중요하게 본 지점은 무엇인가.
“여러 시대를 오가며 보여줌으로써 타카키가 겪는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통해 시간의 무게감을 더 느낄 수 있다고 봤다. 시간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알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과거에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어디까지든 갈 수 있을 것처럼 하늘을 바라보던 소년이 어느 순간 모니터와 프로그래밍만 바라보는 삶을 사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라는 질문과 함께 시간의 흐름과 잔혹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런 점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시대를 오가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때 중점을 둔 것은.
“벚꽃잎이 흩날리는 속도와 눈이 내리는 속도, 그리고 그 방식이었다. 벚꽃이 흩날리거나 눈이 내리는 장면이 등장인물의 감정과 연결돼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타카키와 아카리가 밤에 벚나무 아래에서 만나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눈이 내리는데, 두 사람이 느끼는 그 순간의 공기 흐름은 너무나 소중하고 절실하며 깊은 추억이 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이 내리기는 하지만 마치 시간이 약간 멈춘 듯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똑같은 1초라도 그들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질 수 있는 순간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눈이 내리는 모습을 일반적으로 보는 것보다 더 천천히 보여줬다. 그렇게 풍경과 감정을 함께 연결하려고 했다. 실제로 벚꽃이나 눈이 내리는 속도를 있는 그대로 찍은 것은 아니다. 감정에 맞춰 풍경의 속도를 조절했다. 그런 점에서 감정과 풍경의 관계를 의식하며 촬영했다.
이번 작품은 풍경 컷이 상당히 많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언가를 느끼는 순간, 감정이 여러 방향으로 요동칠 때는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늘이나 빛을 바라보며 애절함을 느끼거나 슬퍼지거나 감정이 깊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일은 일상에서 자주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단순히 인물의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더 풍요롭게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영화는 자칫 인간 중심으로만 찍히기 쉬운데 실제로 우리는 혼자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거나 방에서 창밖을 보거나 운전을 하며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다. 그때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이 아니라, 고민이나 기쁨, 슬픔을 떠올리며 풍경을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도 풍경을 통해 감정이 투영되길 바랐고, 일상의 리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원작에서는 내레이션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데 영화에는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침묵과 공백을 통해 어떤 것을 전달하고자 했나.
“실사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반드시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차이는 살아 있는 인간이 직접 연기한다는 점이다. 그 지점을 최대한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부분이 많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손이 움직이고 눈이 움직이며 나만의 말투가 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컨트롤해서라기보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분을 포착해 보여주는 것이 실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은 누군가가 그려 넣어야 움직인다. 그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 방식의 차이라고 본다. 실사의 특징은 살아 있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여러 움직임과 기색이 그대로 담긴다는 점이다. 아주 사소한 표정의 변화가 무언가를 의미할 수 있고, 말을 할 때 단어와 단어 사이에 두는 미묘한 시간의 간격 역시 실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실제 인간이 보여주는 실사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싶었다. 독백이나 내레이션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인물이 드러내는 아주 작은 기색과 미묘한 변화로 언어를 대신해 영화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애니메이션의 감성과 질감을 실사로 구현하는 데 있어 어디까지 재현해야겠다고 목표했나.
“애니메이션의 모든 컷을 캡처했다. 각각의 컷을 잘라 이 장면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여 이 컷이 완성됐는지를 모두 분석했다. 3장 구성으로 돼 있는데, 각 장 안에서 카메라가 몇 퍼센트 정도 줌을 했는지도 분석했다. 그것이 처음 한 작업이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이 한 컷 한 컷을 어떤 의도로 그렸는지, 어떻게 화면을 움직였는지를 살펴보며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해 내려는 작업이었다. 움직임뿐 아니라 필터 사용 방식도 유심히 봤다. 특히 신카이 마토코 감독님 작품의 특징 중 하나가 광선이 일직선으로 뻗는 빛의 묘사인데, 이를 위해 어느 장면에서 필터를 사용했고 어느 부분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는지도 파악했다. 그렇게 약 20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만들었다. 그 이후 화각과 필터에 대해서도 자료를 정리했다. 애니메이션에서 사용된 화각을 20년이 지난 지금 그대로 가져갈지, 바꿀지를 판단했다. 여러 요인으로 바꾼 부분도 있고, 애니메이션에서 감독이 표현한 의도를 그대로 따라 거의 동일하게 구현한 부분도 있다. 촬영 방식과 화면 구성에 있어 그만큼 많은 의식을 기울였다.
이런 것들이 촬영에 관한 기술적 접근이라면, 애니메이션의 정서를 어떻게 실사로 재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타카키라는 인물에 얼마나 나 자신을 겹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타카키의 내면에는 신카이 감독님이 자신의 모습을 많이 투영했을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이번 실사 영화를 만들며 내가 나를 겹쳐 넣고, 마츠무라 호쿠토가 연기로 한 번 더 덧입히고, 요네즈 켄시의 노래가 다시 한 겹을 더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타카키라는 인물의 정서에 얼마나 깊이 다가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봤다. 그렇게 다가가는 힘이 있어야 애니메이션에서 실사화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정서가 일관되게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점을 구현하려 노력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처음 실사화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신카이 감독 작품을 실사화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다. 한번 도전해 보자는, 다소 고양되고 들뜬 마음이 있었고 기대감이 더 컸다. 이 기획을 내게 의뢰해 준 프로듀서가 있는데, 그분이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줬다. 그래서 자신감을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발휘해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 더 컸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신카이 감독님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신카이 감독님 역시 우리 팀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비교적 순조롭게 계속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늘 불안하다. 원작이 있는 영화를 만들든, 원작이 없는 영화를 만들든 그 부분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봐줄지에 대해서는 변함없이 걱정이 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중압감을 늘 느끼고 있다. 다만 그것이 나쁘지만은 않은 중압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관객과 만난 소감은.
“한국영화를 많이 봤고 영향을 많이 받아서 한국 관객들이 내 영화를 봐준다는 것 자체가 매우 기쁘다. 앞서 영화제에도 가보고 일반 상영회도 가보며 매번 다양한 경험을 한국에서 했다. 이번 영화는 아직은 관객 반응을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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