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권 ‘셀프 연임’ 논란이 극에 달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부패한 이너서클이 소수가 돌아가며 지배권을 행사한다”며 강력 질타하고 지배구조 개선을 주문했다. 이에 금감원이 올해 초부터 KB·신한·하나·우리·NH농협·BNK·iM·JB 등 8개 금융지주를 대상으로 CEO 승계 절차, 사외이사 독립성, 이사회 견제 기능을 포괄하는 특별점검에 착수했다.
KB금융 양종희 회장은 오는 2026년 11월 임기 만료를 앞둔 가운데 아직 8개월 남은 상황에서 올해 3월 주총에서 사외이사 구성이 연임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앞서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은 재임 중 사외이사 7명 중 6명을 물갈이해 ‘참호 구축’ 의혹 속 지난해 12월 연임에 성공했으나 독립성 논란이 지속 중이다.
하나금융은 지배구조 규범 개정으로 70세 룰을 완화해 회장 임기 연장을 사실상 허용, ‘셀프 임기 연장’ 비판을 샀다. BNK금융은 계열사 3000억 원대 횡령 사고 직후 빈대인 회장 연임을 밀어붙여 ‘거수기 이사회’ 오명을 썼다.
이런 사례들은 인물 중심 지배구조의 한계를 드러내며 시스템 전환의 시급성을 강조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에서 이를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한 나라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르는 곳은 언제나 금융이다. 금융기관은 단순한 영리 기업이 아니라 국민 예금을 수탁하고 자본을 배분하며 경제 전체의 혈액 순환을 책임지는 공적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금융기관 지배구조는 주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금자와 납세자,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와 직결된 사회적 의제다.
그런데 우리 금융지주 지배구조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물로 사외이사를 채우고 견고한 ‘거수기 이사회’를 구축해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이른바 ‘셀프 연임’ 논란은, 우리 금융권의 신뢰를 끊임없이 갉아먹는 고질적 병폐였다.
이를 특정 경영자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금융지주에서 임기가 끝날 때마다 이 논란이 어김없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구조적 결함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뿌리는 깊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구조에서는 이사회가 아무리 많은 회의를 열어도 감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경영진 의중에 따라 선임된 사외이사가 그 경영진의 연임을 심사하는 구조는 설계 자체가 모순이다. 제도가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이 시점에 법조계에서 의미심장한 변화가 감지된다. 국내 대형 로펌이 회계법인 출신의 내부통제·리스크 관리 전문가를 대거 영입하며 경영컨설팅 조직 강화에 나서고 있다. 내부통제컨설팅센터, 경영컨설팅센터 등 이름으로 관련 조직을 신설하거나 고도화하며 시장 선점에 나선 현상은, 단순한 업무 영역 확장으로 읽히지 않는다.
금융사가 이처럼 로펌의 문을 두드리는 목적이 법정 변론이 아닌 이사회 투명성 확보와 내부통제 시스템의 근본적 재설계에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 금융 지배구조가 직면한 위기의 깊이와 변화의 절박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이 사후적 ‘법적 대응’의 시대를 지나 지배구조 설계라는 ‘사전적 경영 전략’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로펌이 컨설팅 시장에 본격 진입한 지금이야말로, 금융지주가 인물 중심 경영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시스템 중심 지배구조로 전환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답은 새로운 제도의 발명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제도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데 있다. 승계 프로세스의 투명화, 책무구조도의 실질화, 보상 체계와 책임의 연동, 세 가지 모두 낯선 개념이 아니지만 지금까지 형식에 머물렀기에 반복적으로 실패해 왔다.
첫 번째는 승계 프로세스의 투명성을 통한 ‘신뢰의 정당성’ 확보다. 거수기 이사회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사외이사 선임 단계부터 현 경영진의 영향력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독립적 거버넌스가 작동해야 한다. 지배구조법 개정안의 문구에 맞춘 형식적 절차 이행을 넘어, 주주총회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고 외부 전문가 풀을 활용한 상시적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후보군 관리와 평가 기준이 외부 주주에게 투명하게 공개될 때, 비로소 경영의 연속성과 시장의 신뢰가 함께 확보된다. 누가 보더라도 납득할 수 있는 승계 시나리오가 시스템적으로 작동할 때, 금융지주는 특정 개인의 사유화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인사가 권력자의 의중이 아닌 공개된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는 사실 자체가, 지배구조 신뢰의 출발점이 된다.
두 번째는 올해부터 본격 도입된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를 단순한 규제 대응용 면피 도구가 아닌, 실질적인 책임 경영의 나침반으로 삼는 일이다. 대형 로펌이 컨설팅 조직을 강화하며 가장 공을 들이는 영역 역시 책무구조도 설계에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무구조도는 대형 금융 사고 발생 시 문책 대상을 가려내기 위한 처벌의 명부가 아니라, 경영진 각자의 권한 한계와 책임을 명확히 지도화(Mapping)함으로써 의사결정 과정의 독단과 전횡을 상시 견제하는 경영 인프라가 돼야 한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함정이 있다. 만약 로펌 컨설팅 목적이 규제의 빈틈을 찾아 책임을 분산·회피하는 법률적 방패 제작에 그친다면, 우리 금융권은 머지않아 또 다른 형태의 내부통제 실패와 마주하게 된다. 책무구조도가 서류 속에만 존재하는 한, 그것은 지배구조 선진화의 증거가 아니라 면죄부에 불과하다. 책임 경계가 모호한 지배구조는 결국 경영의 방만함으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 소비자와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세 번째는 지배구조의 실효성을 완성하는 보상 체계의 혁신이다. 아무리 정교한 지배구조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경영진의 경제적 유인 구조가 단기 수익 창출에 매몰돼 있다면 그 시스템은 결국 무력해진다. 경영진이 연임이나 단기 주가 부양을 위해 잠재적 리스크를 외면하거나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하지 않도록, 성과급 체계를 장기적 건전성 지표와 밀접하게 연동하는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
나아가 금융 사고나 심각한 내부통제 부실이 확인될 경우, 이미 지급된 보수를 환수하는 ‘클로백(Clawback)’ 제도를 실질적으로 운영해 경영진에게 무한 책임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보상이 권한이 아닌 결과와 책임에 연동될 때, 경영진은 비로소 단기 성과보다 기관의 장기적 건전성을 선택하는 유인을 갖는다. 지배구조의 실질적 자정 능력은 제도의 정교함이 아니라, 경제적 유인 구조가 올바른 방향을 가리킬 때 작동한다.
금융권 지배구조 선진화는 금융당국의 압박이나 여론의 질타에 떠밀려 수행하는 마지못한 숙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글로벌 금융 환경의 불확실성이 극심해지고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지금, 투명하고 견고한 지배구조는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자 주주 가치를 높이는 핵심 자산이다. 로펌과 회계법인이 가세한 컨설팅 경쟁이 진정한 혁신의 촉매제가 되려면, 금융사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겠다는 의지가 선행돼야 한다.
인물에 의존하는 권력은 유한하고 언제나 위태롭지만, 시스템에 기반한 지배구조는 어떤 풍랑 속에서도 조직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가 된다.
금융지주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길은 결국 하나다. ‘누가 다스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운영되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시스템으로 답하는 것이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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