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검사와 수사기관, 법관은 수사와 기소, 재판을 담당하며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을 전제로 권한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법령을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하거나 사실과 증거 판단을 왜곡했다는 의혹이 제기돼도, 이를 직접 처벌할 명확한 규정은 없었다. 국회가 법왜곡죄를 신설하면서 법관과 검사, 수사기관이 법령 적용과 증거·사실 판단을 고의로 왜곡한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처음 마련됐다. 이 법은 사법권 행사에 대한 책임을 명문화했다는 평가와 함께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란 속에 국회를 통과했다.
◇ ‘고의적 법 왜곡’ 형사처벌 명문화… ‘책임’과 ‘독립’ 논쟁
26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법왜곡죄 신설을 포함한 형법 개정안을 재석 170명 가운데 찬성 163명, 반대 3명, 기권 4명으로 가결했다. 국민의힘은 법안 처리에 반발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뒤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의석 과반을 바탕으로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같은 당에서도 반대표와 불참이 나오면서 처리 과정에서 이견이 드러났다.
법왜곡죄는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서 법령 적용 요건을 따르지 않고 의도적으로 결과를 바꾸거나, 증거를 인멸·은닉·조작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법관이나 검사, 수사기관이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법 적용 기준을 알고도 이를 무시해 사건의 결론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될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기존에도 위증이나 증거인멸 등의 개별 범죄는 처벌 규정이 있었지만 법을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한 조항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조항은 수사기관이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고의로 숨기거나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를 사용해 기소를 유지하는 경우, 또는 재판부가 법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특정 결론을 내리는 경우 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사법농단 사건이나 증거조작 사건처럼 재판과 수사 과정에서 권한 남용 논란이 반복돼 온 점을 고려하면 사법권 행사에 대한 책임을 형사적으로 명확히 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다만 법 적용은 본질적으로 해석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 기존 판례와 다른 판단이나 새로운 법리를 적용한 판결이 사후적으로 문제 될 경우 그 판단이 단순한 법 해석인지, 아니면 처벌 대상인 ‘왜곡’인지 구분하는 문제가 남는다. 판결에 대한 불복이 항소와 상고를 넘어 형사 고발로 이어지는 구조가 자리 잡을 경우 법관과 검사들이 정치적·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판단을 주저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표결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당론과 달리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법이 다른 사법개혁 입법들과 결합될 경우 수사기관이 재판의 법 적용까지 들여다보는 구조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삼권분립의 균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취지의 우려를 밝혔다. 재판 결과에 대한 판단이 형사 수사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될 경우, 재판의 최종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안을 심사해 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내부에서도 의견은 엇갈렸다.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은 민주당이 본회의 직전 법안 내용을 일부 조정한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법 적용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의 수정이 입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충분한 논의 없이 법안이 변경된 절차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법안을 추진한 당 내부에서도 처벌 범위와 방식, 제도의 방향을 놓고 판단이 갈렸다는 점이 확인된 대목이다.
국민의힘은 법왜곡죄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며, 법관과 검사의 법 적용 판단을 사후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재판의 독립성과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판결이나 기소 판단이 형사 고발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될 경우, 형사사법 절차 전반이 정치적 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반면 법안 추진한 민주당은 사법권 행사 역시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 규정을 명확히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재판과 수사 과정에서 법령 적용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증거를 조작하는 행위는 기존 형법만으로 처벌에 한계가 있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입법이라는 설명이다.
법왜곡죄 신설로 형사사법 권한 행사에 대한 형사책임 근거가 처음으로 마련됐지만, 실제 적용 범위와 기준은 앞으로의 수사와 재판을 통해 구체화될 전망이다. 법령의 ‘고의적 왜곡’과 정당한 법 해석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가 향후 이 조항의 실질적 의미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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