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최주연 기자]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제재와 지배구조 개편,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은행권이 ‘성장 공식’ 자체를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단순한 비용 부담을 넘어 경영 의사결정 구조와 수익 모델 전반에 걸친 구조적 전환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 달 홍콩 ELS 불완전판매 관련 과징금을 확정할 예정이다. 과징금은 당초 2조원에서 1조4000억원 안팎으로 낮아졌지만, 업계는 이번 사태를 통해 당국이 은행권에 보낸 메시지가 분명하다고 평가한다. 고위험 상품 판매 과정에서 내부통제 실패가 발생할 경우 비용 부담뿐 아니라 경영책임까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이사회 책임 강화와 최고경영자(CEO)의 내부통제 의무 명문화 등을 추진 중이다. 이는 금융사고를 ‘실무 리스크’가 아닌 ‘경영 리스크’로 규정하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앞으로는 상품 판매 전략, 성과보상 체계, 리스크 관리 기준 모두가 이사회와 경영진 책임 범위 안에서 재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기류 속에서 은행권은 ELS 판매 재개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은 ELS 재판매를 위한 거점점포 선정이나 판매 시기 검토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제재 수위가 확정되면 판매를 재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최근에는 고난도상품 자체에 대한 리스크 재평가가 이뤄지는 분위기다.
홍콩 ELS 사태가 ‘대표적 불완전판매 사례’로 규정되면서, 향후 고난도상품 관련 사고 발생 시 해당 사례가 제재 판단의 비교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도 은행권 내부에서 확산되고 있다.
◇ 이자 의존 구조 한계 직면…은행권 체질 전환 가속
더구나 가계대출 총량 규제는 은행권의 ‘이자 중심 성장 공식’에 정면으로 제동을 거는 조치다. 그동안 은행들은 가계대출 확대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이자이익을 확보해 왔지만, 금융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지난해(1.8%)보다 낮은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히면서 기존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다주택자·임대사업자 대출 관리 강화와 주택담보대출 총량 별도 관리 등이 현실화될 경우 대출 증가세 둔화는 피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성장률 조정이 아니다. 수익의 70~80%를 이자이익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총량 규제는 곧 수익 기반을 직접 압축하는 조치다. 과거처럼 자산 규모를 늘려 이익을 확대하는 방식은 구조적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은행들이 ‘ELS 없이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해 주요 은행들은 ELS 판매가 사실상 중단됐음에도 증시 호황에 힘입어 방카슈랑스와 펀드 판매가 늘면서 역대 최대 수준의 비이자이익을 기록했다. 5대 은행의 지난해 비이자이익은 5조6481억원으로 전년 대비 13.4% 증가했다.
이는 은행이 고난도 파생상품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시장 환경과 상품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수수료 기반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위험 상품을 통한 ‘수수료 확대 전략’의 필요성 자체가 재검토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은행권의 과제는 수익 포트폴리오 재편이다. 자산관리(WM), 기업금융(IB), 플랫폼 사업, 수수료 기반 사업 등 비이자이익 확대가 불가피한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은행권의 경영 패러다임이 ‘규모의 성장’에서 ‘통제와 질적 성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제는 자산을 얼마나 늘리느냐보다, 리스크를 어떻게 통제하면서 수익을 다변화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며 “지배구조 개편과 총량 규제가 맞물리면서 은행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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