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임경제]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이 해상으로 움직인다. 국적선사가 멈추는 순간 대한민국 경제도 멈춘다."
HMM 해상노동조합을 이끄는 전정근 위원장이 3선 임기를 시작하며 해운산업의 국가적 의미를 '경제의 대동맥'에 비유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선장을 '캡틴'이라 부르며 존중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뱃사람'으로 폄하하는 시선이 남아 있다"며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전 위원장은 해기사 인력 문제, 임금 정상화 과정, HMM 매각 논의, 정부의 선대 확충 지원까지 폭넓게 짚으며 "국적선사는 물류안보의 최후 보루"라고 강조했다.
■"100m 전력 질주인 줄 알았는데…노동운동은 마라톤"
전 위원장은 노동조합 활동을 "끝없는 협상과 조정의 과정"으로 표현했다. 그는 "처음엔 100m 전력 질주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결승선에 다가선 순간, 200m가 남아 있었고 또 달리니 300m가 이어졌다"며 "그제야 깨달았다. 이 싸움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걸"이라고 했다.
노동조합 활동은 단기 성과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협상은 늘 새로운 변수와 국면을 만들고,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승패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균형을 찾는 과정이다. 3선에서도 방향은 같다. 해상 직원 권익을 지키고, 승선 현장에서 체감한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하나씩 개선해 간다는 입장이다.
■ MZ노조 핵심···"명분 없는 투쟁은 실패한다"
MZ세대 노동운동의 핵심 키워드로 '명분'을 꼽았다. 그는 "노동조합이 관성적으로 강경한 방식만 반복한다면 사회적 반감을 살 수밖에 없다"며 "싸움의 이유가 불분명해지는 순간, 신뢰는 빠르게 무너진다"고 강조했다.
과거 전태일 열사 시절 노동운동이 생존권을 위한 절박함에서 비롯됐다면, 오늘날엔 다른 조건 위에 서 있다. 사회적 공감과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 그는 강성과 합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평가 역시 결국 "정당한 명분을 확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값싸게 쓸 선원이 없는 것"…탈해운의 진짜 이유
젊은 해기사들의 '탈해운' 현상에 대해 최근 몇 년 사이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임금과 처우가 가장 큰 문제였다"며 "고립된 공간에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데 실질소득이 따라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임금이 오르고 휴가가 늘었다. 비과세 혜택이 확대됐고, 스타링크 확산으로 선내 인터넷도 개선됐다. 승선 기간도 6개월에서 4개월로 줄었다. 이런 변화로 해상선원의 퇴사율이 급감하는 추세다.
인력난 논란에 대해서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값싸게 쓰려는 선원이 없는 것"이라며 "양질의 해기사 인력은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성과급은 선심 아니다"…눈물 젖은 빵 버틴 존중의 결과
과거 2021년 임금협상을 회고했다. 그는 "회사에서 임금을 못 올리겠다고 하자 '그럴 거면 MSC로 이직하겠다'는 말이 나왔다"며 "단체 사직서까지 쓸 만큼 강경하게 맞섰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노사 간 진통 끝에 임금이 정상화됐고, 구조조정 기업이 회복한 데 이어 처우까지 제자리를 찾아간 것은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성과급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HMM은 직원들이 눈물 젖은 빵을 함께 먹으며 회사를 지켜왔다"며 "해상 직원들은 장갑도 빨아 쓰고 걸레도 아껴 쓰면서 버텼다"라며 성과급은 선심이 아니라, 그 시간을 견딘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다는 설명이다.
■해운은 금융, 선대 규모 확대…"HMM 매각은 신중해야"
이재명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과제로 선대 확충과 금융지원을 꼽았다. 그는 "HMM은 국내 1위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며 "얼라이언스 체제 속에서 경쟁하려면 선대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선박 한 척이 수천억 원 단위다. 금융 조달이 원활해야 산업이 성장한다"며 해운은 물류를 넘어 금융산업이다고 강조했다.
HMM 매각과 민영화 논의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주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지만, 잘못된 주인을 찾을 바에는 정부가 계속 관리해야 한다"면서 과거 민간에 맡겼을 때 껍데기만 남긴 경험을 경계했다.
■"국적선사는 대한민국 경제의 대동맥"

국적선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육로가 막혀 사실상 섬나라와 다름없다"며 "국적선사가 없다면 외국 선사가 '한국 안 들어가겠다'는 순간 우리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해상운송이 멈추는 것은 단순한 물류 차질을 넘어 공급망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적선사는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산업의 안전판이라는 것이다.
한진해운 파산 당시 외국 선사들이 물류비 인상을 시도했던 사례도 언급했다. 그는 "국적선사가 무너지면 물류비는 외국 선사의 결정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며 "국적선사는 단순 기업이 아니라 물류 안보의 최후 보루"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캡틴'이라…"한국도 선원 인식 바뀌어야"
선원 직업 인식 전환을 마지막 화두로 던졌다. 그는 "가장 큰 요인은 가족이다. 배를 탄다는 건 가족과 떨어지는 일"이라며 "나도 첫째 아이 출산을 함께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한 선원의 아들이 '학교에서 아빠가 없다'는 따돌림을 겪자 정복 차림으로 배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일화도 소개했다.
해외에서는 선장을 '캡틴'이라 부르며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 깊다. 영국 등 해양국가에서는 선원과 선장을 국가 산업을 떠받치는 전문직으로 대우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여전히 '뱃사람'이라고 폄하하는 시선이 남아 있다. 그는 "해상 직원들이 없으면 대한민국이 멈추는데도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진다"며 "존중과 인식 전환이 산업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적선사가 흔들리면 공급망이 흔들린다. 해운은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문제라는 뜻이다. 전 위원장은 "선원과 해상 직원들은 대한민국 산업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버티는 사람들"이라며 "우리 사회도 해운과 선원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적선사는 대한민국 경제의 대동맥이자 물류안보를 떠받치는 최후의 보루다. 바다를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 없이는 해운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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