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지방선거를 넉 달여 앞두고 정개특위가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전북 도의원 선거구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공직선거법’ 개정 시한이 이달 19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선거구를 그대로 두면 위헌 상태가 되고, 개정에 나설 경우 농촌 의석 축소라는 정치적 부담이 뒤따른다. 선거구 개정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치권은 한 표의 무게와 지역 대표성 사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 투표가치 평등과 지역 대표성 보장 갈림길
지방의회의원 선거에서 대표성은 두 가지 축으로 설명된다. 하나는 인구를 기준으로 의석을 나누는 ‘인구대표성’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 공동체를 정치적으로 반영하는 ‘지역대표성’이다. ‘인구대표성’은 한 표의 가치가 어디에서나 같아야 한다는 평등선거 원칙에 기반한다. 반면 ‘지역대표성’은 인구가 적더라도 특정 지역의 생활권과 이해관계가 정치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지방의회는 주민 복리와 지역 행정을 직접 다루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인구 비례만으로 대표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논리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문제는 이 두 원칙이 인구 감소와 지역 격차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구 간 인구 차이가 커지면 동일한 한 표가 의석 구성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선거구 획정의 기본 원칙은 표의 등가성이지만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경우 농산어촌(농업·산간·어업) 지역 대표성이 약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져 왔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인구가 적은 자치구·시·군에도 최소 1명의 광역의원을 두도록 하면서 동시에 선거구 간 인구편차는 평균의 상하 50% 범위 안에서 맞추도록 하고 있다. 지역대표성을 보장하는 규정과 투표가치 평등 원칙이 함께 작동하는 구조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전북 장수군 도의원 선거구가 인구편차 허용 범위를 벗어났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2년 지방선거 기준 전북 도의원 선거구 평균 인구는 약 4만9,765명이었지만, 장수군은 2만1,756명으로 인구편차가 –56.29%에 달했다. 헌재가 제시해온 상하 50% 기준을 넘은 것이다.
이 사건의 특징은 기존 논쟁과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선거구 논란은 인구가 많은 지역이 의석을 적게 받는 ‘과소대표’ 문제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장수군 사례는 인구가 적은 지역이 단독 선거구를 유지하면서 ‘과대대표’가 발생한 경우였다. 헌재는 이를 문제 삼으며 최소의석 보장 규정이 있더라도 인구편차 기준을 넘어설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지역대표성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인구비례 원칙에 따른 투표가치 평등은 선거구 획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며 다른 요소를 고려하는 입법자의 재량도 이 범위 안에서만 허용된다고 못 박았다. 지역대표성을 이유로 인구편차 기준을 넘어서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취지다.
이 결정으로 국회는 법 개정 시한을 떠안게 됐다. 헌재는 혼란을 막기 위해 해당 규정을 올해 2월 19일까지 유지하도록 했지만 그 이후에는 효력이 사라진다. 지방선거는 오는 6월이다.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으면 공천과 후보 준비 선거관리 일정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국회입법조사처는 8일 ‘투표가치의 평등과 지역대표성의 경계’ 보고서를 내고 정치권의 선택지를 정리했다. 보고서는 헌재 결정 이후 선거구 획정 기준을 재설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구대표성’과 ‘지역대표성’의 충돌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라고 진단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첫 번째 선택지로 ‘의원 정수 확대(안)’을 제시했다. 인구가 적은 지역의 의석을 유지하면서 인구가 많은 지역의 의석을 추가로 늘려 편차를 맞추는 방식이다. 이 경우 단독 대표가 사라지는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완충형 해법’으로 거론된다. 다만 총정수 산정 방식 자체를 손봐야 할 가능성이 있어 법 개정 폭이 커질 수 있고, 의원 수 증가에 따른 예산 부담과 여론 반발이 뒤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 번째는 ‘최소의석 규정’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인구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을 인접 지역과 합쳐 선거구를 구성하면 인구편차 기준을 맞출 수 있다. 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비용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카드로도 거론된다. 다만 군 단위 단독 선거구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고 한 명의 의원이 여러 지역을 동시에 대표해야 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읍·면·동 분할 제한 등 현행 규정과 맞물리면 선거구 설계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지적된다.
세 번째는 ‘선거제도 자체’를 개편하는 방식이다.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정당명부제 도입 등을 통해 대표성을 구조적으로 재설계하자는 접근이다. 선거구 경계 조정만으로 반복되는 인구편차 문제를 완화하고 정치적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거론된다. 다만 이는 선거제도의 기본 틀을 바꾸는 사안으로 적용 범위와 파장이 넓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제도 개편을 추진할 경우 준비 부족에 따른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 과제로 분류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지방정치의 균형점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구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면 농촌 지역 의석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지역대표성을 유지하려면 의석 확대나 제도 개편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번 입법은 선거구 숫자를 조정하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 시대에 지방정치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선택에 가깝다. 한 표의 무게를 맞출 것인가, 한 지역의 목소리를 지킬 것인가. 지방선거를 앞둔 국회가 마주한 질문은 단순하지만 그 답이 만들어낼 정치적 파장은 결코 단순하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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