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독과점 구조를 악용해 국민에게 고물가를 강요하는 행태는 공권력을 총동원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같은 공개 질타를 한 이후 생리대에 이어 설탕·밀가루까지 생필품 가격 인하가 잇따르고 있다.
식품업계 반응이 가장 빨랐다. 발언 직후 제분·제당 업계를 중심으로 가격 조정이 빠르게 이어졌다.
CJ제일제당은 전일 소비자용 설탕·밀가루 전 품목 출고가를 최대 6% 인하했고, 삼양사도 설탕과 밀가루 가격을 평균 4~6% 낮추기로 했다. 대한제분는 앞서 이달 초 밀가루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4%대 인하했다.
CJ제일제당은 “국제 원당·원맥 시세 하락과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를 반영한 결정”이라고 설명했고, 삼양사도 “소비자 장바구니 부담 완화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국제 시세 반영’과 ‘물가 안정 기여’를 내세웠지만, 업체의 속내는 복잡하다. 업계에선 이번 인하가 최근 수조 원대 담합 혐의로 공정위·검찰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직설적인 압박까지 더해지자, ‘정권 리스크 관리용’ 조치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은 이들 업체가 담합을 통해 거둔 부당이득 규모가 약 9조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이 내려간 지 꽤 됐는데 정작 소비자 가격은 쉽게 안 내려왔다”며 “대통령 발언 후 서둘러 인하를 발표한 건 담합 비판을 피하기 위한 ‘성의 표시’로 읽힐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현장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폭도 그리 크지 않다. 이마트는 5일 대한제분 밀가루 6개 품목의 판매가를 3~4%대 인하했다. 대표 상품인 ‘곰표 밀가루 1kg(중력분)’은 기존 1790원에서 1710원으로 4.5% 가량 내려 판매 중이다. 가격 차가 1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마트는 향후 다른 제조사들도 가격 인하를 요청 시 협의를 통해 판매가를 조정할 방침이다.
설탕·밀가루 가격 인하가 빵·라면·과자 등 가공식품 전반의 도미노 인하로 이어질 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식품 제조사 관계자는 “정부의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제품 가격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라며 “고환율에 따른 수입 원가 부담과 인건비,물류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출고가 인하분을 그대로 가격에 반영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B2B(기업 간 거래) 가격은 연간으로 진행돼 향후 어떻게 적용될지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생리대 시장의 움직임은 지난달 한발 먼저 시작됐다. 대통령이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한국 생리대가 해외보다 40% 정도 비싸다” “싼 생리대는 왜 생산을 안 하냐”고 직설적으로 비판하자, 제조사와 유통업체가 중저가 라인을 확대하고 ‘반값’을 내세운 자체 브랜드(PB) 생리대를 잇달아 내놓았다. 쿠팡이 출시한 장당 100원 안팎의 PB 생리대는 출시 직후 단기간에 물량이 품절됐다.

대통령은 생활용품 업계의 ‘반값 생리대’ 공급 확대 보도를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공유하는 등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은 달랐다.
대형마트에서 만난 30대 A씨는 “1~2개 저렴한 선택지가 늘어난 건 맞지만 전체 평균 가격이 내려갔다고 느끼긴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비자도 “행사 때 몇 천원 싸게 파는 것과 큰 차이를 못 느낀다”며 “늘 쓰던 제품 가격은 그대로”라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인하를 물가 안정보다는 ‘보여주기식’ 가격 인하로 치부한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가 사실상 ‘물가 억제’에 해당한다는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 2024년에도 정부의 가격 압박에 라면·빵·과자 업체가 잇따라 인하 행렬에 동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재료·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다시 가격을 올리거나,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역주행한 사례가 뒤따랐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치적 메시지가 단기적으로 가격 인하를 이끌어낼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물가 안정은 시장 구조 개선과 경쟁 촉진에서 나온다”며 “지금은 이벤트성 인하보다 독과점 구조 개선과 투명한 원가·마진 공개 등 유통 구조 자체를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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