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설탕부담금’ 도입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를 지역 공공의료 강화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사실상 다른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설탕 전반에 대한 과세보다는 가당 음료에 한정한 부담금 정책을 통해 국민건강 증진과 소아·청소년 비만 예방에 집중하고, 지역·필수의료 재원은 담배세 인상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박은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지난 5일 대한예방의학회가 개최한 설탕부담금 정책 토론회에서 “설탕부담금 도입 자체에는 적극 찬성하지만, 이를 지역 공공의료 재원으로 연결하는 정부 구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설탕부담금을 통해 확보한 재원을 지역 필수의료 강화나 건강보험 재정 보전에 사용하는 데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 설탕부담금의 목적은 세수 확대가 아니라, 국민의 당 섭취를 줄이는 건강정책 수단이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설탕 전반에 부담금을 매기기보다는 가당 음료를 대상으로 한 부담금 도입이 산업계의 자발적인 당 함량 저감을 유도하고 정책 효과도 명확하다고 봤다.
박 교수는 “설탕부담금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부담금 수입이 ‘0원’에 가까워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며 “걷힌 재원은 소아·청소년 비만 예방 연구, 체육 인프라 확충, 저소득층 아동 대상 건강식품 바우처 등 원인 해결을 위한 영역에 전액 재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박 교수는 지역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안정적 재원 확보 방안으로 담배세 인상을 제안했다.
그는 “국내 담뱃값은 OECD 평균의 약 30% 수준에 불과하며, 1갑당 4만원에 이르는 호주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며 “담배 부담금을 50% 수준, 약 400원만 인상해도 연간 1조원가량의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 필수의료 재원은 흡연이라는 명확한 건강 위험 요인에 부담을 부과하는 방식이 사회적 정의 측면에서도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이날 ‘설탕세’가 아닌 목적성이 분명한 ‘설탕부담금’ 개념을 강조했다. 그는 “세금은 정부가 일반 재원으로 사용하는 반면, 부담금은 국민건강증진기금처럼 사용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과일 등에 포함된 자연당이나 고체 형태의 당류가 아닌, 가당 음료에 포함된 액상 유리당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액체 형태의 당은 체내 흡수가 매우 빠르고 혈당 급등을 유발해 대사질환 위험을 높인다”며 “정책적으로 차단해야 할 대상은 모든 당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첨가된 액상 당류”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청소년의 가당 음료 섭취 수준은 이미 우려 단계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박 교수에 따르면 한국 10대 남학생의 비만율은 OECD 평균에 근접한 수준이다.
그는 “청소년 비만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75%에 달하며, 고혈압·당뇨 같은 신체 질환뿐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사회적 문제로도 확산된다”며 “이를 막기 위해 가격 정책을 통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제도 설계안으로는 영국의 가당 음료 부담금 모델이 언급됐다. 영국은 음료 100ml당 당 함량을 기준으로 △5g 미만 비과세 △5~8g 저율 △8g 이상 고율 등 3단계로 차등 부과하고 있다.
박 교수는 “국내에서도 5g 미만은 면세, 5~8g 구간은 약 225원, 8g 이상은 300원 수준의 부담금을 적용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며 “이 경우 기업들은 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당 함량을 낮춘 제품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제도가 안착될수록 소비 감소와 제품 성분 조정이 동시에 일어나 실제 세수는 GDP의 0.01% 수준인 약 2000억원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초기부터 과도한 세수 기대를 갖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분석했다.
최근 소비가 늘고 있는 대체 감미료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박 교수는 “WHO 역시 대체 감미료의 장기적 건강 위험성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라며 “당장 과세하기보다는 사용 추이를 지켜보거나, 필요하다면 인공 감미료에 한해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지역의료 현장에서 활동 중인 이경수 영남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역시 설탕부담금 도입 논의가 정치적 메시지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대통령의 SNS 발언과 관련해 “설탕부담금으로 조성한 재원을 지역 공공의료 강화에 쓰겠다는 구상은 논리적 연결 고리가 약하다”며 “소아·청소년 비만 정책은 국정 과제로 제시돼 있지만, 정작 관련 예산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만 예방과 직접 연관된 재원 확보 방안을 지역의료 강화와 연결한 것은 논란을 촉발하기 위한 정치적 메시지에 가깝다”며 “제도가 성공하려면 재원 사용처와 정책 효과를 어떻게 평가할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급 감소 효과는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핵심 효과지만, 광범위한 건강 증진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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