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12일 미국 보건복지부가 ‘미국인을 위한 식이 지침’을 발표했다. 해당 지침에서 ‘장 건강’ 항목에는 우리나라의 ‘김치’가 새롭게 명시됐다. 김치와 함께 일본의 미소 된장, 독일식 양배추절임 자우어크라우트, 양젖 발효 음료 케피어 등의 발효음식들이 장 건강에 필수적인 음식으로 선정됐다.
물론 김치가 몸에 좋다는 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기관이 직접 식이 지침으로 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치를 비롯한 발효식품이 장 건강을 유익하게 해주는 결정적 이유는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이다.
◇ 몸을 이루는 가장 작은 세계, ‘마이크로바이옴’
“모든 질병은 장(腸)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400년경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그는 장 건강이 나쁘면 여러 질병이 발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현대의학이 발전한 현재, 대다수 연구자들은 이 이야기에 동의한다. 소화기 질환뿐만 아니라 암과 비만 등 우리 몸 전체 질병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어서다.
이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장 건강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세균과 바이러스, 곰팡이 등 인체 내부에 살고 있는 모든 미생물을 총칭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몸속 미생물 분포 지도’라고 볼 수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제1의 유전체’라고도 불린다. 우리 장기 내부에는 면역세포 70%와 100조마리 이상의 여러 균이 살고 있다. 이 미생물들의 유전자 양은 인간의 갓을 아득히 초월하는 수준이다. 때문에 우리 몸의 건강을 책임지는 첫번째 유전체라는 의미에서 이 같은 별명으로 불리는 것이다.
장내미생물은 유익균, 유해균, 중간균으로 나뉘어 균형을 이룬다. 이때 장내미생물 균형이 깨지면 유익균 군집이 붕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염증과 스트레스가 발생, 암과 당뇨 등 각종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로바이옴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최근 연구에 따르면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 등 신경계 및 뇌 질환과도 관련이 깊다. 실제로 최근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생명과학과 고아라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입속에 사는 세균이 파킨슨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파킨슨병 환자 장내 미생물을 분석했다. 그 결과, ‘스트렙토코커스 뮤탄스(Streptococcus mutans)’가 일반인보다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세균은 충치를 유발하는 구강세균이다.
스트렙토코커스 뮤탄스는 ‘우로카네이터 환원효소(Urocanate reductase, UrdA)’와 ‘이미다졸 프로피오네이트(Imidazole Propionate, ImP))’이라는 효소를 만든다. 연구팀은 파킨슨병에 걸린 실험용 쥐를 분석, 이 효소들이 혈액과 뇌 조직에 크게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도파민 신경세포 파괴, 운동기능저하 등이 확인됐다.
이정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마이크로바이옴융합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은 온몸에 존재하지만 장기에 95% 이상 존재하는데 최근 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각 기관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사람들이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며 “장기뿐만 아니라 뇌, 폐나 간, 피부까지 모두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마이크로바이옴”이라고 말했다.
◇ 난치성 치료제의 새 희망… “거부감과 명확한 기전 규명은 해결 과제”
마이크로바이옴이 난치성 질환 치료 가능성, 건강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답으로 떠오르면서 관련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국내선 대표적으로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대형병원 등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 연구기관으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이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장-뇌 축 기반 파킨슨병 병인 규명 을 통한 진단 및 제어 기술 발굴’를 꼽을 있다. 지난 2022년 7월부터 시작된 이번 연구는 오는 올해 12월31일까지 진행된다. 연구예산은 총 15억원이 투입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또한 생명연 마이크로바이옴융합연구센터에서는 ‘폐암에서 개인 맞춤 항암치료를 위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프로토타입 개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월부터 12월31일까지 진행된 해당 연구는 이세훈 삼성서울병원 교수팀과 공동 진행했다. 폐암 개인 맞춤 항암 치료를 위한 기능성 균주 스크리닝 및 효능 검증이 핵심 연구 주제다
연구책임자인 이정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마이크로바이옴융합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해당 연구는 폐암 환자의 경우 항암 치료를 할 때 반응성이 좋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며 “이를 환자의 분변에서 체취한 장내 미생물을 분석해 알아내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차이를 보이는 환자들에서 미생물의 차이가 나는 미생물을 찾아 그 미생물을 항암 치료를 할 때 마이크로바이옴 병행 치료를 하면 훨씬 더 효과가 좋을 것이라 생각해 이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신약 개발 등 바이오신산업에서도 핵심 기술로 떠오르는 추세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바이오기술시장은 오는 2030년 22억6,000만달러(약 3조3,317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도 10.47%로 매우 높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미 2개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상태다. 첫 번째 승인은 ‘리바이오타’다. 두 번째로 승인된 약물은 ‘SER-109’다. 두 치료제 모두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CDI)’ 치료제다. CDI는 장내 정상 세균총이 파괴돼 유해균이 과도하게 증식하는 질환이다.
다만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에 대해 부정적 의견도 존재한다. 첫 번째로 환자가 느끼는 ‘거부감’이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말 그대로 건강한 사람의 장내 세균을 환자에 이식하는 것이다. 즉, 이 균은 ‘대변’ 샘플에서 추출할 수밖에 없다.
김명희 생명연 마이크로바이옴융합연구센터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는경구용(먹는 약)이나 항문에 대변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이뤄지는데 이때 환자들의 거부감이 큰 문제 중 하나”라며 “또한 암 환자와 같이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의 경우, 감염 문제 등 안전성 우려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어떤 마이크로바이옴이 ‘건강한가’에 대한 기준도 아직 명확치 않다. 수백종이 넘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장내에 서식하는데, 각각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효소와 물질도 다르다. 즉, 수천, 수만가지가 넘는 물질과 미생물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의 효과를 아직까지 정확히 규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항상 일관성있는 효과가 뒷받침돼야하는 치료제로서 마이크로바이옴이 부적합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명희 센터장은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어떤 균주의 어떤 물질이 체내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정확한 마이크로바이옴의 체내 작용기전을 반드시 규명해야 신약으로서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개인별 마이크로바이옴 환경과 관계 없이 일관된 치료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보편적 치료제 개발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정말힌 분자 수준까지의 마이크로바이옴 균주 및 물질 특성에 대한 정리가 확립돼야할 것이고 현재 관련 연구 트렌드도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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