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정수미 기자] 보험업계 ‘오너 3세 경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연말·연초 인사와 조직개편을 계기로 주요 보험사들이 오너 3세를 핵심 경영 보직에 전면 배치하면서, 그간의 ‘경영 수업’ 국면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교보생명에 따르면 회사는 최근 정기 인사를 통해 신창재 회장의 장남인 신중하 상무를 전사 AX(인공지능 전환)지원담당 겸 그룹경영전략담당으로 임명했다. 신 상무는 AX 전략 수립부터 현업 적용, 인프라 구축까지 전사적인 인공지능 전환을 총괄하는 동시에 그룹 경영 전략을 함께 담당하며 교보생명의 중장기 방향 설정을 책임지게 됐다.
신 상무는 임원으로 경영에 입문한 다른 오너 3세들과 달리 현장 실무부터 경력을 쌓았다. 2015년 교보생명 계열사인 KCA 손해사정에 대리로 입사해 보험 실무를 경험했고, 2022년 교보생명으로 이동해 그룹디지털전환담당과 그룹데이터전략팀장을 역임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는 디지털 금융과 인공지능(AI)를 활용한 성장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차남인 신중현 교보라이프플래닛 실장 역시 그룹 내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신 실장은 자회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 디지털전략실장 역할을 유지하면서, 최근 교보생명 글로벌제휴담당을 겸직하게 됐다. 이에 따라 교보생명은 오너 3세 두 명 모두를 동시에 모회사 핵심 전략 조직에 배치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지주사 전환을 앞둔 교보생명이 차기 경영 체제를 염두에 두고 오너 3세의 역할을 한층 명확히 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화생명에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사장이 글로벌 사업과 해외 금융사 인수·합병(M&A)을 중심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 있다. 김 사장은 보험업계 오너 3세 가운데 가장 먼저 경영 성과를 요구받는 위치에 오른 인물로 평가된다. 김 사장은 캐롯손해보험 설립을 주도하며 디지털 보험사 모델에 도전했지만, 영업손실이 이어지면서 결국 한화손해보험으로의 흡수합병을 택했다.
이후 김 사장은 글로벌 사업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 4월 인도네시아 재계 6위인 리포그룹이 보유한 노부은행 지분 40%를 인수하며 국내 보험사 최초로 해외 은행업에 진출했다. 지난해 말에는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지분 75%를 매입하며 미국 진출 교두보도 마련했다.
다만 실적 부담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한화생명의 올해 3분기 별도 기준 누적 순이익은 3158억원으로 전년 동기(5846억원) 대비 45.9% 감소했다. 글로벌 확장 전략과 별개로 보험 본연의 수익성과 자본 효율성 개선 여부가 향후 성적표의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현대해상도 조직 개편을 통해 오너 3세의 경영 보폭을 넓히는 모습이다. 현대해상은 내년 1월 1일부터 기존 ‘상무-전무-부사장’의 3단계 임원 직급 체계를 ‘상무-부사장’의 2단계로 통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몽윤 회장의 장남인 정경선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의 직위도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변경될 예정이다.
회사 측은 이번 조치를 승진이 아닌 직급 단순화에 따른 형식적 조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30대 오너 3세가 부사장 직위로 이동하는 구조적 효과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최근 현대해상이 임원 세대교체와 조직 슬림화를 병행해온 점을 감안하면, 차기 경영 체제 전환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는 분석이다.
보험업계 전반에서는 오너 3세 경영인들이 더 이상 상징적 존재나 혁신 이미지에 머물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 3세들의 경영 전면 등판 시기가 앞당겨진 만큼, 차기 CEO 후보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는 숫자로 성과를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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