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규 뒤에 숨은 조희대 대법원… 위선과 꼼수로 얼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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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18일 대법관 회의를 열고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 제정을 통해 자체적으로 ‘내란·외환 사건 전담재판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 뉴시스
대법원이 18일 대법관 회의를 열고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 제정을 통해 자체적으로 ‘내란·외환 사건 전담재판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조희대 대법원이 ‘예규 뒤에 숨는 선택’을 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년 동안 사법부는 “신속·엄정한 단죄”를 약속했지만, 현실은 그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다. 내란이라는 헌정 파괴 범죄를 두고도 재판은 지연됐고, 국민은 답답함과 불신 속에서 사법부를 지켜봐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법률적 장치를 마련하려 하자 대법원은 뒤늦게 ‘국가적 중요사건 전담재판부 예규’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를 두고 입법을 견제하고 사법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선택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대법원이 책임 있는 제도 개혁이 아닌 ‘최소한의 형식적 대응’에 그쳤다는 비판이 사법부 안팎에서 고조되고 있다.

◇ ‘예규’로 가린 책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대법원은 18일 대법관 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등 정치·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국가적 중요사건’으로 정의하고, 이 사건들을 무작위 배당한 뒤 해당 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지정해 신속·공정한 재판을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예규는 행정예고를 거쳐 시행될 예정이며 12·3 비상계엄과 관련한 내란 사건의 항소심부터 적용될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같은 사건을 다룰 내란·외환 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을 23일 본회의에 상정하고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에 나서더라도 24일에는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겉으로만 보면 국회 논의에 맞춰 사법부가 응답한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실제 경과를 따져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수사와 재판 일정, 구속 만료 시점은 이미 오랫동안 예견돼 있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1년 가까이 ‘사법부 독립’과 ‘위헌 우려’를 반복하는 데 머물렀고, 내란전담재판부법이 본회의 처리 국면에 들어선 뒤에야 서둘러 예규를 꺼내 들었다. 이 때문에 단순한 제도 보완이 아니라, 입법을 견제하고 사법 권한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내란 재판을 좌우할 기준이 ‘법’이어야 하느냐, 아니면 대법원이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는 ‘예규’여도 되느냐는 문제다. 예규는 어디까지나 대법원 내부 규칙일 뿐이다. 국회가 만드는 법처럼 국민적 합의와 책임이 담보되지 않는다. 대법원장이 바뀌거나 분위기가 달라지면 언제든 수정되고 사라질 수 있는 ‘임시 안전장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내란·외환 같은 헌정 파괴 범죄를 이런 불안정한 규칙에 맡기겠다는 건 사건의 무게와 책임감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10월 30일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등 종합감사에서 12.3 내란과 사법부 관련 질의를 하는 도중 모니터에 관련 도식이 표출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조희대 대법원이 내세워 온 ‘사법부 독립’ 논리도 스스로 모순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가 법률로 전담재판부 설치를 추진하자 대법원과 법원장 회의, 법관대표회의 등 사법부는 △“특별재판부는 위헌 소지가 있다” △“재판 독립을 침해한다” 등의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정작 사법부가 내놓은 해법은 국회 입법을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는 수준의 예규다.

국민이 선출한 입법부가 내란 청산의 제도적 장치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법까지 만들 필요는 없다, 사법부가 알아서 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과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권분립을 명분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비판해 온 사법부가 실제로는 내부 규칙을 앞세워 입법을 선제 차단하려 한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된다.

또 대법원이 밝힌 내용만 놓고 보면 예규는 무작위 배당과 전담재판부 지정 원칙을 앞세우고 있을 뿐이다. 정작 어떤 사건을 △국가적 중요사건으로 볼지 △재판 지연을 어떻게 막을지 △재판 공개와 투명성을 어떻게 높일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드러나 있지 않다. 1년 넘게 이어진 재판 지연 논란을 구조적으로 해소할 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전담체제를 구축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재판 구조 위에 간판만 바꿔 단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법부를 믿어 달라”는 선언이 아니다. 사법부도 법의 규제를 받는 기관이라는 것을 국민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내란을 심판할 전담 체제 논쟁은 결국 누가 헌법 앞에서 책임을 질 것인가의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조희대 대법원이 예규를 방패 삼아 입법을 견제하는 태도를 지속할 경우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조희대 대법원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란 청산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불안정한 예규로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방관하는 사법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국회와 국민 앞에서 법률에 근거한 투명한 심판 구조를 함께 만드는 사법부로 기억될 것인지가 이번 결정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결국 역사는 힘이 아니라 책임 있는 선택을 기억해 왔다. 대법원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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