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경제] 청약통장을 둘러싼 시장의 온도가 빠르게 식고 있다. 한때 ‘무조건 유지해야 할 필수 금융상품’으로 여겨졌던 청약통장이 최근 들어서는 해지 대상이 되고 있다. 분양가 급등과 대출 규제, 과열된 가점 경쟁이 맞물리면서 청약 시장에 대한 체감 난도가 크게 높아진 영향이다.
한 달 새 5만여명 이탈...서울·수도권 가점경쟁 심화, 대출 규제
19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전체 청약통장 가입자는 2천626만4249명으로 전월 대비 약 4만9000명 감소했다. 특히 1순위 청약통장 가입자가 한 달 새 5만8000명 넘게 줄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신규 가입자보다 장기간 유지해온 통장 보유자들의 해지 규모가 더 컸다는 의미다.
연간 흐름으로 보면 이탈은 구조적이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021년 정점을 찍은 이후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역시 일부 달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해지 흐름이 우세하다. 집값 급등기에는 언젠간 쓸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써도 소용없다는 회의가 앞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약통장 민심 이반의 핵심에는 가점 경쟁이 있다. 서울과 수도권 주요 단지에서는 사실상 고가점 통장만이 당첨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가 굳어졌다. 최근 분양된 서초구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의 경우 최저 당첨 가점이 70점, 최고는 82점에 달했다. 4인 가구 기준 만점인 69점으로도 탈락한 셈이다. 송파구 ‘잠실 르엘’ 역시 최저 커트라인이 74점으로 나타났다.
대출 규제까지 겹치며 체감 장벽은 더 높아졌다. 분양가 상승으로 수억 원대 현금이 필요해진 상황에서, 청약은 ‘당첨돼도 감당이 가능한가’라는 또 다른 문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입 기간이 짧고 가점이 낮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청약통장 무용론’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지방서 만점 가점↑...서울·수도권 경쟁 피해 이동
한편 가점 만점 통장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올해 1~11월 민영아파트 기준 80점 이상 고가점 통장이 나온 단지 8곳 중 5곳이 지방이었는 분석을 내놨다. 84점 만점 통장 역시 4곳 중 3곳이 지방 단지였다.
이는 지방 분양시장이 살아났다는 신호라기보다는, 서울 청약 경쟁에서 밀려난 고가점 통장들이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지역으로 이동한 결과로 해석된다. 지방 전체 평균 청약 경쟁률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특정 단지에만 고가점 수요가 쏠리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청약 제도 자체도 수요자들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규제지역 확대 이후 추첨제 물량은 줄고 가점제 비중은 높아졌다. 전용 85㎡ 이하 중소형은 물론, 중대형 평형에서도 가점제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가 적은 계층은 구조적으로 불리해졌다.
여기에 실거주 의무, 전매 제한 등 추가 조건까지 더해지며 청약은 단순한 ‘당첨 게임’이 아니라 장기 거주와 자금 계획을 동시에 요구하는 선택이 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수요자들은 통장을 유지하기보다 매매 시장으로 방향을 돌리거나, 아예 통장을 해지해 자금을 유동화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만능 열쇠→개인 상황에 따라 판단 '선택지'
전문가들은 "청약통장이 더 이상 만능 열쇠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면서도, "향후 공공주택 공급 확대와 생애최초·청년·신혼부부 특별공급 비중 확대 등은 여전히 기회 요인으로 남아있다"고 조언한다.
청약 시장을 떠나는 민심은 단기 현상이 아닌 주거 사다리의 난도가 더 높아졌다는 구조적 신호에 가깝다. 과거처럼 무조건 유지해야 할 보험이 아니라 개인의 생애주기와 자금 여력, 지역 전략에 따라 판단해야 할 선택지가 됐다는 것은 이견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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