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95] 아이는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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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아이를 목욕시키는 일은 예전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시기마다 아이가 거부하는 원인이 계속 바뀌어 애를 먹었다. 한동안 순조로운가 싶었는데 요즘 다시 힘든 시기가 왔다.

일단 아이가 목욕하기로 결심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노는 게 제일 좋아”라고 노래하는 뽀로로처럼 밤이 늦도록 놀고 싶어서, 목욕하자는 말을 못 들은 체한다. 정작 놀고 싶은 만큼 실컷 놀고 난 뒤에는 너무 피곤한지 드러누워서 양치만 하겠다고 버틴다.

어르고 달래서 욕실 앞까지 가면 이제부터는 옷을 벗는 게 문제다. 아이 스스로 옷을 벗을 줄 알 만큼 자랐지만, 아직 요령이 부족하다. 윗도리를 벗으려고 오른손으로 왼쪽 소매를 잡아당기며 왼쪽 팔꿈치를 굽혀서 옷에서 팔을 뺀다. 오른쪽 소매도 똑같이 한다.

그러고는 윗도리를 올리며 머리를 빼는데 여기서 꼭 문제가 생긴다. 옷을 앞으로 당겨서 얼굴 위로 먼저 올린 후 뒤통수 쪽을 마저 벗으면 좋으련만, 요령 없이 머리 위로만 잡아당기니 윗도리가 코나 눈에 걸린다. 아이는 온갖 비명을 지르며 더 세게 옷을 잡아당기고 그럼 눈꺼풀이 옷에 쓸려서 더 비명을 지른다.

그걸 도와주겠다고 손을 뻗으면 안 된다. 옷이 얼굴에 걸려서 힘들어하는 걸 얼른 해결해 주고 싶지만 아이에겐 아무리 괴로워도 옷 벗는 걸 자기 스스로 완수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도와주려고 손끝만 갖다 대어도 아이는 악을 쓰고 발을 구르며 다시 옷을 입겠다고 한다. 기어코 옷을 다시 입고는 처음부터 옷 벗는 과정을 오직 제힘으로만 한다.

아이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에도,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얼른 그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표현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거쳐야 할 과정을 지나는 모습인가 보다.

장난감을 조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도미노를 만드는 자동차 장난감은 작동시키기 전에 긴 케이스에 도미노 막대를 차곡차곡 넣어야 한다. 세밀한 작업이라 케이스를 닫다가 애써 넣은 막대가 쏟아지곤 한다. 또 숫자에서 자동차로 변신하는 장난감을 조작할 때는 작은 부품이 부러지기 십상이다.

아이는 제가 장난감을 이리저리 만지다가 망가지게 된 결과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망가진 걸 잠시 바라보다가 아쉽게 돌아설 뿐이다. 내가 지레 아이가 속상해 할까봐 염려하고 도와주려 하면 오히려 그 행동에 화가 난다.

어떤 걸 이루기 위해서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이 실패한다는 건 아이에게 별다른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 조카가 먼 길을 걸어가면서도 킥보드를 타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인도와 차도 사이 턱을 넘거나 울퉁불퉁한 길이 이어져서 낑낑대고 땀을 닦으면서도 그게 힘들거나 괴로워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좀 더 도전적이고 실패를 감수하며 스스로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지도 모르겠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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