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를 담배에 포함시켜 규제하자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본회의 상정을 눈앞에 두고 또다시 좌초됐다. 전자담배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규제 공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청소년 흡연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거세다.
지난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해 올라온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끝내 통과시키지 않았다. 개정안의 내용은 담배의 정의에 니코틴을 원료로 제조한 제품을 포함해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를 기존 담배와 동일하게 규제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합성니코틴은 현행법상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세금 부과, 판매 제한, 유해 물질 관리 등 모든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고 자판기 판매도 가능해 청소년들이 접근하기가 매우 쉽다.
정부는 신속한 입법을 요청했지만 여야는 규제의 빈틈을 지적하며 계류를 선택했다. 김기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행 시점과 적용 기준을 문제 삼았다. 법 시행 시점이 공포 6개월 후이며 적용 기준이 제조장 반출이나 수입신고 시점이다 보니 업체들이 법 시행 전에 대량 생산 또는 대규모 수입을 통해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유사니코틴 문제를 거론했다. 법안이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니코틴뿐인데 시장에는 이미 니코틴을 모방한 물질이나 마약류 성분을 합성해 만든 유사니코틴이 이미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의원은 "담배 정의를 더 넓히고 부칙에서 규제 시점을 판매 시점으로 바꾸는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유사니코틴 확산 우려를 고려하면 담배사업법 개정 전에 정부가 유사니코틴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대책 마련 전에는 심의를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권의 완벽한 규제론이 실제 현장에서 청소년들에게 닥친 위험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는 현행법상 담배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고 구매가 쉽다. 최근에는 SNS 광고와 온라인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다양한 향이 첨가된 니코틴 제품이 청소년들에게 빠르게 확산하는 상황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흡연 청소년 중 액상형 전자담배 이용률은 2020년 25.5%에서 2023년 35.5%로 급증했다. 합성니코틴 제품은 향과 디자인이 다양하고 냄새가 거의 없다는 점 때문에 은밀한 흡연으로 더 선호되며 청소년 흡연 입문의 주요 경로로도 지목되고 있다.
학교 주변 무인판매점에서 청소년들이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는 사례도 다수 보고되고 있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성평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점검한 전자담배 자판기 241개 중 성인 인증 장치가 미설치된 기기는 17대, 성인 인증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기가 10대로 자판기 열 대 중 한 대에서 성인 인증 없이 전자담배 구매가 가능했다.
또한 무인 판매점 200곳(83%)은 외부에 성인 인증 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현행법상 무인 전자담배 판매점은 청소년 출입 금지 업소가 아니라서 성인 인증 장치를 의무적으로 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언제든지 가까운 무인점포에서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를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 9월 삼육대학교가 발표한 아동·청소년 전자담배 사용 예방 교육 보고서도 충격적이다. 설문에 참여한 청소년 302명 중 39.7%가 전자담배를 일반 담배의 대체제나 금연 보조제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32.2%는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거나 전혀 해롭지 않다고 믿고 있었다. 이는 그간 규제 사각지대가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14년 전 전현희 의원의 발의로 논의가 시작된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정치권에서 계속 표류하는 사이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전자담배 시장은 빠르게 진화하며 그 영향력을 더욱 키웠고 청소년 흡연 문제는 방치된 채로 시간만 흘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완벽한 법이 아니라 청소년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아닐까.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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