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학 녹취록 논란… 무너진 ‘검찰 기록권력’ 신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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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사태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후폭풍이 확산하는 가운데, 검찰이 핵심 증거로 제출했던 정영학 녹취록이 조작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 뉴시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사태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후폭풍이 확산하는 가운데, 검찰이 핵심 증거로 제출했던 정영학 녹취록이 조작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여진 속에 검찰의 증거조작 의혹이 새로운 정국 변수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장동 수사 당시 검찰이 핵심 증거로 제출했던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의 신뢰성을 정면으로 문제 삼으며 사건은 또다시 정치권의 중심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문제의 녹취록은 남욱·정영학 등 대장동 주요 관계자의 대화를 담아 ‘윗선 개입’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자료로 활용돼 온 만큼 녹취록의 신뢰성 논란은 대장동 사건의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사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동상이몽 듣기평가… 음성과 다른 단어의 녹취록

민주당 정치검찰조작기소대응 특별위원회는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제출한 정영학 녹취록은 원본 음성과 대조했을 때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드러난다”며 “단순한 오기가 아니라 특정한 방향성에 맞춘 왜곡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 사례도 제시됐다. 2013년 5월 남욱 변호사가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9,000만원을 전달한 정황을 설명하는 대화에서 남욱이 언급한 “재창이형”이 검찰 제출 녹취록에서는 “실장님”으로 기재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 한 단어가 정진상 전 실장을 사건의 흐름 안으로 끌어오는 데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또 같은 해 8월 대화에서 남욱 측이 말한 “위례신도시 너 결정한 대로 다 해줄 테니까”라는 지명이 검찰 녹취록에서는 “윗 어르신들”로 바뀌어 있었다며 “마치 윗선이 직접 지시한 것처럼 서사가 재구성됐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두 사례는 우연적 오기라고 보기 어렵고,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맞춘 의도적 해석이 개입된 정황”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검찰이 원본 음성을 확보한 뒤 전문 속기사를 동원해 별도의 녹취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일부 표현은 과장되고, 일부는 삭제됐으며 일부는 의미가 다르게 해석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녹취록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재구성된 것이라면 검찰 수사의 정당성은 근본부터 흔들린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당시 검찰 수사팀은 “조작은 전혀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복수의 속기사가 각자 들리는 대로 녹취록을 작성했고 녹취록과 함께 원본 음성파일도 재판부에 제출했기 때문에 고의적 왜곡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반박은 곧 △어떤 속기본을 ‘공식 기록’으로 선택했는지 △속기사 간 내용 차이가 있을 때 어떤 표현을 채택했는지 △편집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 외부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점을 드러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정치검찰조작기소대응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장동 사건 관련 정영학 녹취록이 검찰에 의해 조작됐다고 주장·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정치검찰조작기소대응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장동 사건 관련 정영학 녹취록이 검찰에 의해 조작됐다고 주장·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문제의 본질은 불투명성이다.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같은 원본 음성을 놓고 서로 다른 문서가 만들어졌고 그중 무엇이 재판의 기초 자료가 됐는지를 검찰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곧 ‘검찰 기록권력’의 독점성과 불투명성으로 이어진다.

검찰이 어떤 문장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서사가 달라지고 특정인의 개입 여부가 달라지며 나아가 기소 가능성 자체가 뒤집힐 수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사실상의 해석권을 검찰이 독점하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속기사 간 청취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어떤 버전을 공식 기록으로 선택하고 어떤 문장을 삭제·수정했는지는 여전히 검찰 내부 판단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정영학 녹취록은 △대장동 개발 구조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역할 △‘윗선 지시’ 여부 등 사건의 정치적 함의를 규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이런 자료가 오해석 또는 재구성 가능성을 내포한 기록물로 드러날 경우 검찰의 수사 결과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민주당이 이번 문제를 단순한 ‘오역·착오’가 아닌 ‘기록권력의 오남용’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검찰이 제출한 녹취록과 정영학 측이 제출한 녹취록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속기사가 다시 확인한 내용이 서로 불일치한다는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속기 차이로 보기엔 특정 단어가 지속해서 동일 방향으로 왜곡돼 있다”고 주장하고, 수사팀은 “속기 차이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며 조작은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사이에서는 “속기 차이를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여러 속기본 중 어떤 것을 공식 증거로 선택했는지는 충분히 문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공방은 앞으로 더 거제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남욱의 진술 번복에 맞춰 정치적 공세를 강화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고, 민주당은 “검찰 스스로 공정한 기록을 만들지 못했다면 수사 전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맞섰다. 여야의 격한 공방 속에서 이번 논란은 대장동 사건을 넘어 검찰 기록의 신뢰성과 검증 체계 구축이라는 제도적 장치의 부재라는 구조적 의제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정영학 녹취록 논란이 던진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이다. 검찰이 만든 기록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으며, 그 신뢰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보증해야 하는가다. 이번 사안은 대장동을 둘러싼 정치공방을 넘어 한국 형사사법 체계 전반에 던지는 구조적인 질문이다. 검찰의 기록권력이 불투명하게 행사될 경우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제도 개선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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