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국의 실패를 비웃을 때가 아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얼마 전, 유튜브에서 뉴스를 볼 때였다. 중국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제조사 ‘ASML’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무단 분해했다 재조립에 실패, ASML 측에 기술 지원을 요청했다는 영상을 보게 됐다. 영상 댓글창에는 ‘역시 중국 기술이 그럼 그렇지’, ‘조립도 못하네. 한심하다’ 등 누리꾼들의 비웃음이 이어졌다.

기자 역시 잠시 머릿속에 ‘그걸 왜 뜯어보지?’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반도체 연구원 지인 중 한 명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에게 이유를 물어보자 ‘중국이 반도체 제조장비 분야까지 장악하려는 것 같다’고 답했다. 최신 설비를 분해한 후,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를 진행해 기술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술력이 부족한 국가가 선진국 장비를 역설계해 연구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역설계와 벤치마킹은 기술적 격차가 클 때 빠른 학습 수단으로 매우 유용하다.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 모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역설계는 개발도상국 등에서 기술 격차를 좁히고 산업 전체 기술 수준이 급상승하는 방안 중 하나로 꼽힌다.

사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현대차는 일본의 자동차를 들여와 분해한 후, 기술을 연구했다. 이후 100% 자체 생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능까지 향상시킨 제품을 생산해냈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는 현대차가 탄생하게 됐다.

물론 현재 역설계는 기업 윤리, 저작권, 영업비밀 등 국제법상 문제로 금지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국가에선 역설계를 통한 기술연구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타 국가의 기술 탈취, 인재 흡수 등으로 악명이 높은 국가다. 그런 중국이 역설계를 통해 ASML 등 반도체 장비 기술까지 흡수할 경우, 반도체 산업계에서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보일지 두려운 일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핵심 산업인 ‘디스플레이’는 중국에 이런 식으로 따라잡혔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세계 디스플레이 점유율은 중국이 54.6%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30.6%로 2위에 머물렀다. 전 세계 압도적 기술력 1위인 OLED 산업도 위태롭다. 중국의 OLED 공급 점유율은 오는 2030년 42%로 늘어날 전망이다. 같은 기간 한국은 58%다. 현재 69%인 점유율에서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결국 중국의 맹추격을 막아낼 것은 압도적 기술력의 유지밖에 없다. 즉, 역설계를 해 쫓아온다해도 그 다음 기술을 준비해 계속 앞서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뛰어난 인재 확보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AI)기술이나 막대한 자본이 뒷받침 된다해도 ‘천재 엔지니어’ 1명이 더 소중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매년 이공계 인재는 감소한다. 그나마 있던 인재들은 미국, 일본, 유럽, 심지어 중국으로 빠져나간다. 한국 과학연구의 기둥인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과학자들은 연필 하나, 물 한 병 구매한 영수증 처리에 시간을 낭비한다. 낮은 임금때문에 인력조차 부족하다. 그러나 예산이 없어 그 빈자리조차 메우질 못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올해 국정감사 현장은 어떠했는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정쟁만 난무했다. 열심히 출연연 관련 질의, 논의를 준비한 의원들은 뒷전으로 뭍혔다. 언론사들도 전부 양당의 정쟁을 1면에 싣기 바빴다. 

동화 ‘거울나라의 엘리스’에선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 뒤로 밀려난다. 앞으로 가기 위해선 남들보다 두 배는 빨리 뛰어야 한다. AI, 우주항공, 생명과학, 양자컴퓨터 핵융합 등 과학기술전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시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만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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