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배우 윤여정이 이번에는 동성애자 손자를 둔 K-할머니로 돌아온다.
19일 부산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영화 '결혼 피로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순차통역 방식으로 진행된 행사에는 앤드루 안 감독을 비롯해 배우 윤여정, 한기찬이 참석했다.
'결혼 피로연'은 두 동성 커플의 가짜 결혼 계획에 눈치 100단 K-할머니가 등장하며 벌어지는 예측불가 코미디. 제4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이안 감독의 1993년 동명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한국계 감독 앤드류 안이 원작의 감성을 살리면서도 시대에 맞는 시각을 더하고, 한국 문화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이날 안 감독은 "1993년 (원작) 영화를 봤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처음으로 동성애를 다루는 영화를 봤다. 특히 아시아인 동성애를 다뤄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의미 있는지 잘 몰랐다"며 "하지만 그 이후 한 사람으로서, 영화인으로서 그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가 너무 좋아서 꼭 리메이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하지만 93년 이후 굉장히 많은 것이 변했고, 미국 같은 경우 동성애자가 결혼할 수도 있다. 나도 지금 인생의 시점에서 결혼과 아빠가 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며 "그런 희망과 들뜸, 불안감 내지는 긴장감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다. 특히 퀴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독특한 과제에 직면해야 되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미나리'를 통해 제93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이 동성애자인 손자 민(한기찬)을 품는 할머니 자영 역을 맡는다. 차별과 편견 속에서도 가족을 온기로 감싸안는 특별한 'K-할머니'를 선보일 예정이다. 윤여정은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에 이어 한국계 감독의 두 번째 협업에 나서게 됐다.
윤여정은 "처음 앤드류한테 오퍼를 받았을 때는 엄마였다. 그런데 캐스팅을 하고 보니 얘(한기찬)는 20대더라. 앤드류한테 '이건 좀 너무한 것 같다. 할머니를 하겠다'라고 할머니를 하겠다고 했다"며 "(자영은) 평범한 할머니다. 나는 연기할 때 계획을 하는 사람이 못된다. 대본을 많이 읽으면 그 여자 성격을 알게 되고, 내가 이 여자라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하면서 역할을 소화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엄마에서 할머니로 바뀌면서 연기에 변화가 있었냐는 물음에는 "연기를 계획해서 수학 문제 풀듯이 하지는 않는다. 엄마였든, 할머니였든 간에 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같을 것"이라며 답햇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되고 보니, 부모들은 아이를 교육시키려는 의무감 때문에 야단치고 이러지 말라는 걸 많이 한다. 할머니가 되면 굉장히 너그러워지더라. 멀리서 바라보면서 그냥 건강하게 잘 만 커주면 된다"며 "'내 뜻대로 인생이 되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네 몫을 살길 바란다' 평소의 생각이 할머니 역할을 하면서 묻어났을 수는 있겠다"고 설명했다.

자영의 손자이자, 가짜 결혼 계획의 주동자인 민은 한기찬이 연기한다. 민은 크리스(보웬 양)와 5년째 연애 중인 장수 커플이지만, 청혼을 거절당하자 '리'(릴리 글래드스톤)와 안젤라(켈리 마리 트란) 커플의 시험관 시술비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안젤라와 가짜 결혼을 계획한다.
한기찬은 "내가 1998년 생이다 보니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대본을 받고 알았다. 원작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오히려 원작을 따라가고 갇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그냥 현재 대본에 충실했다"며 "내가 해석한 것과 원작의 방향성이 같을까, 다를까 하는 의구심과 궁금증이 있었다. 그걸 참으면서 촬영에 임했고, 촬영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서야 원작을 봤다"고 털어놨다.
한기찬은 '결혼 피로연'에 앞서 2020년 웹드라마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통해 동성애자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역할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첫 작품 때가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주제가 평범하지 않았다. 그때 '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자' 이런 생각을 했다.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우리가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내면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인터뷰를 할 때마다 '당신이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시라' 했다. 그런 마음으로 이번 역할을 준비했다. 그냥 한 사람이고, 한 남자라는 생각 했다"며 "사실 역할보다는 영어가 좀 더 힘들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영어권 국가에 처음 가봤다.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 이 커뮤니티를 통해 많이, 계속해서 배웠다"고 덧붙였다.

앞서 윤여정은 지난 4월 '결혼 피로연' 개봉을 앞두고 관련 외신 인터뷰에서 "첫째 아들이 2000년에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했다"며 "뉴욕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됐을 때 그곳에서 아들의 결혼식을 열어줬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네가 누구든) 너는 내 손자야"라는 대사로 녹여내는 등, 시나리오 일부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윤여정은 "한국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어떠냐"라는 외신기자의 질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이 좀 더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상관이 없고 누구나 다 평등하다"고 답했다.
이어 "앞으로 한국은, 한국사람은 더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 미국처럼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다. 한국은 굉장히 보수적인 나라다. 내가 여기서 79년이나 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며 "누구나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게이냐, 스트레이트냐, 이성애자냐, 흑인이냐, 황인이냐 이런 카테고리를 나누고 라벨을 붙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니까"라고 강조했다.
또한 윤여정은 "독립영화를 선택하는 이유는 감독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잇어서다. 상업영화나 TV 시리즈는 어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선을 넘는 것이 된다"며 "독립영화는 감독과 같이 둘이 만드는 분위기다. 어떤 파트를 꼭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앤드루가 아는 한국인, 내가 아는 한국인을 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경험한 부모님, 내가 경험한 부모로서의 이야기를 담아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안 감독은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문화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의식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10년 전 형이 결혼했을 때 폐백을 하는 걸 보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더 알아가게 된다고 생각했다"며 "이 영화를 통해서 나도 퀴어로서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마치 나 자신을 위한 한국식 결혼식을 한 것 같다"고 남다른 감회를 했다.
한편 올해 30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9월 17일부터 26일까지 열흘간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개최된다. 공식 초청작 64개국 241편, 커뮤니티비프 87편 등을 포함해 총 328편의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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