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부산=이영실 기자 베니스와 오스카를 석권한 바 있는 할리우드 전설적인 명장 기예르모 델 토로가 신작 ‘프랑켄슈타인’을 들고 부산을 찾았다. 거장의 시선과 한국 관객의 만남은 이번 영화제의 특별한 순간으로 오래 기억될 전망이다.
19일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프랑켄슈타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행사에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참석해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메리 셸리의 고전 SF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각색한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천재적이지만 이기적인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극악무도한 실험을 통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영화로, 제5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멕시코 출신의 감독이자 프로듀서로, 데뷔작 ‘크로노스’(1993)로 칸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한 후 ‘미믹’(1997), ‘악마의 등뼈’(2001), ‘판의 미로’(2006), ‘퍼시픽 림’(2013), ‘크림슨 피크’(2015) 등을 연출했다. 이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해 4관왕을 기록했으며 첫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2022)는 아카데미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상,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상 등을 수상했다.
그리고 새 영화 ‘프랑켄슈타인’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거장 감독의 신작 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 가운데 감독 혹은 배우가 직접 참석해 영화를 소개하는 섹션인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됐고 지난 18일 첫 공식 상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초청으로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렇게 함께할 수 있게 돼 너무나 기쁘게 생각한다”며 “흥분감을 감출 수 없다. 페스티벌의 규모, 관객들의 수준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가 아닌가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첫 상영이 끝나고 객석을 가득 메운 380여명의 관객 모두에게 직접 사인을 해주며 진심을 다해 소통한 것으로 전해져 이목을 끌었다. 감독은 “넷플릭스가 싫어할 수 있지만 모든 관객에게 해주겠다”고 특유의 유쾌한 농담을 전한 뒤 약 1시간 동안 관객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나도 관객이었기 때문에 그 경험이 명확하게 남아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어떤 분을 만나든 항상 그 시간을 충분히 들이고자 한다”며 “사람을 만나는 시간도 좋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5시간이 넘는 영화도 재밌게 봤다고 하면 정말 기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내가 피곤하든 않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며 “그 관객은 나를 만나러 그때 한 번 온 거다. 그렇다면 그것의 가치를 충분히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켄슈타인’은 괴수물의 대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오랫동안 파고든 상상의 세계를 집대성한 작품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박가언 수석 프로그래머는 “오스카 아이작과 제이콥 엘로디의 열연, 세심하게 공들인 미술과 의상, 필름의 질감을 품은 듯한 빛과 그림자까지 모든 요소가 유려한 연출 아래 완벽하게 어우러진다”고 평가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프랑켄슈타인’을 두고 “전기적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빅터를 처음 봤을 때 정말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가 만들어지고 세상에 내버려졌다는 점에서 그랬다. 수년 동안 이것이 우화라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확실히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나의 아버지를 알게 됐다”며 “메리 셸리의 오리지널에 내 자전적 이야기가 녹여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40대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60대에 만든 ‘프랑켄슈타인’과는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작 소설은 그동안 영화와 연극, 만화, TV 시리즈 등 여러 형태로 재창조돼 대중에게 소비돼 왔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내 영화는 같은 주제를 다른 스토리텔링 하려고 한다”며 “내 목소리가 필터가 된다고 보면 된다. 이미 불렀던 노래를 목소리를 바꿔서 다른 창법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엔진이 다르고 캐릭터가 다르다”며 “소설에는 없는 주제도 다룬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그전에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완성했다. 전쟁에 대한 나의 관점도 들어가 있고 부자간의 스토리도 있다. 카톨릭 요소도 많이 들어가 있다”고 차별점을 짚었다.
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불완전’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했다. 그는 “지금은 모든 게 이분법적인 것 같다. 100% 좋거나 100% 나쁘다. 우리의 불완전성을 왜 인식하지 않고 왜 이런 모습을 용서하지 못하는지 그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면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괴수물의 매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상업영화나 TV를 통해 아주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들을 본다. 두려움도 없고. 하지만 사회는 고통으로 가득하고 완벽하지 않다”고 운을 뗐다.

그는 “괴물들은 완벽하지 않음의 성자와 같다”며 “인간의 어두운 면을 대변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비범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상징성이 굉장히 크다.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천사와 악마를 통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기 때문에 매력을 느낀다. 완벽하지 않은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추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리고 이 괴수들은 좋은 상징이 될 수 있다.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또 종교적인 코멘트를 줄 수 있고 또 우화, 동화라는 것을 통해 관객과 나의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영화, 감독들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먼저 박찬욱 감독에 대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혼돈·부조리·시적 추악함까지 한 영화에 버무리며 존재론적 어둠과 낭만을 담아낸다. 정말 아름답고 존재론적인 영화를 한다”며 “그의 영화에는 영혼이 살아 있고,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유니크함이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또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괴물’ 등을 언급하며 “‘살인의 추억’은 허술한 형사와 수사를 통해 존재론적 질문을 드러내고 ‘괴물’은 멋진 괴수 디자인과 함께 한국 사회와 가족 이야기를 담는다. 한국 영화는 주제를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순수한 힘을 보여준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를 보면 다른 나라 상업영화에서 만드는 것과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으로 엄청나게 유니크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정말 사랑하고 그들의 영화를 볼 때마다 에너지와 힘을 느낀다”고 거듭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협업 계획을 묻는 질문에 ‘한국 괴물 백과’ 책을 들어 보이며 “이런 아름다운 책을 줘서 너무 좋다”며 “난 한국 괴수를 좋아한다. 모든 신화를 완벽하게 알기 어렵지만 그 안에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굉장히 좋아한다”고 답했다. 이어 “내가 제작하고 싶은 게 있다. 내가 정말 미치면 직접 만들 수도 있다. 만들게 된다면 정말 잘 아는 걸 하게 될 거다. ‘프랑켄슈타인’도 잘 알기 때문에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난 ‘프랑켄슈타인’은 곧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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