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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장[사진=본인] |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변호사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 따뜻하고 든든해지길 바란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왕미양 변호사가 전한 말이다. 왕 회장은 오랜 시간 한국여성변호사회와 함께하며 여성 변호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왔다.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 둘 다 놓치지 않으려 애써 온 경험 덕분에 후배들에게 “바쁘겠지만 기회가 오면 거절하지 마라. 사람 사이엔 정과 의리가 남는다”라고 조언을 건넬 수 있게 됐다. 어린 시절, 시골 농부였던 어머니가 “너는 판검사 돼라”라고 했던 말 그의 인생을 바꾼 전환점이 됐다. 부단한 노력 끝에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왕 변호사는 어느덧 후배가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선배가 됐다.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 지난해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소회가 어떠십니까?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호사의 사명은 인권 옹호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는 국민의 권익 보호와 인권보장을 위한 업무를 맡는 직역입니다. 이 때문에 국가도 변호사에게 다양한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기여와 봉사가 필요합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기본에 충실하게 활동하고 있고, 그 단체의 회장직을 맡게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또 오랜 시간 한국여성변호사회와 함께하면서 여성 변호사가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현재 1만2천여 명에 이르는 여성변호사에게는 ‘따뜻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습니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그 역할을 해왔다고 자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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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원들과[사진=본인] |
- 2011년부터 활동해 온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어떤 단체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1991년에 창립된 국내 유일의 여성 변호사 단체입니다. 모태는 1988년 설립된 '여성법우회'로, 이는 국내 최초의 여성 법조인인 이태영 변호사를 중심으로 50여 명의 국내 여성변호사가 의기투합해 만든 단체입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법률 전문 지식인 단체로서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했던 성차별을 극복하고, 여성과 아동 인권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현재 전국의 1만2000여 명에 이르는 여성변호사를 대변하며, 단순 친목 단체가 아니라 여성 법조인의 권익 보호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 보호 활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저희는 성평등 실현과 여성의 법적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며, 법조계 내 성별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 제안과 제도 개선 활동도 꾸준히 이어 가고 있습니다.
-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여성가족부 무료법률지원사업, 서울시 직장맘지원센터 위탁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주력 사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2024년 회장직에 취임한 직후, 여성가족부의 '스토킹 및 교제폭력 피해자 무료법률지원사업'과 서울시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 운영 위탁 사업'을 처음으로 맡게 되었습니다. 무료법률지원사업은 여성변호사회 활동이 지방까지 확장되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또 오래전부터 해온 여성 및 아동청소년 피해자, 이주민을 위한 법률상담과 소송 지원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활동을 했습니다. 최근엔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범죄 등 새로운 유형의 피해자 지원,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법률지원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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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미양 변호사[사진=본인] |
-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와의 대화 내용 역시 뭉클했는데요 그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십시오.
저는 시골 농가에서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가난한 농사꾼이었고, 제대로 된 교육 혜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어머니께 “엄마는 내가 커서 뭐가 되면 좋겠어?”라고 물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때 “판·검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응, 알았어. 그러면 나 판·검사할게”라고 답했습니다. 그 대답이 현실이 된 지금 어머니께 정말 고맙습니다.
- 대한변협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으로도 활약했습니다. 그 시절은 회장님에게 어떤 시간이었고, 무슨 배움을 얻었는지 이야기해 주십시오.
대한변협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았던 시기는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여성이라서' 받는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제역할임을 깨달았습니다. 여성 변호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성별을 떠나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 시절 가장 큰 교훈은 “내 인생에 No는 없다” “기회가 오면 거절하지 말라” 라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피하면 본인은 물론 다음 사람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기 때문이지요. 후배에게도 항상 강조하는 말입니다.
대한변협에서의 경험을 통해 법조계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됐고, 여성 변호사들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지금 한국여성변호사회를 이끌어가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여성변호사의 권익 향상과 복지 증진’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기혼 여성 변호사의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에 대해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가정 양립은 여성 변호사가 가장 고민하는 현실적 문제입니다. 직접적 지원은 한계가 있지만 여성 변호사 간의 상호간 교류를 통해 육아 경험 등을 공감하며 위로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완벽한 엄마, 완벽한 변호사가 되려 하지 말고, 균형을 찾아가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죄책감보다는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 개인파산관재인으로 활동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13년 동안 서울회생법원에서 개인파산관재인으로 일하면서 벼랑 끝에 선 이들의 재기를 도운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파산 절차 현장에서 지켜본 2400여 명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개인파산관재인 업무를 하면서 파산을 신청한 이들이 절박한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현장에서 여성 변호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또 이들의 고충을 덜어 주기 위해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여성 변호사가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은 일·가정 양립,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인 것 같습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가 변호사로서 가장 성장해야 하는 시기인데, 출산과 육아가 겹치면서 경력 발전에 제약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사회적으로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합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여성 법조인을 위한 좀 더 포용적인 환경 조성, 유연근무제 도입, 육아휴직 활성화 그리고 보육시설 확대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여성변호사회 총무이사로 일할 당시 어린 자녀를 돌보랴 일하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그 시절 훌륭한 도우미 이모님의 도움 덕분에 육체적으로는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만 ‘아이는 엄마가 직접 키워야 한다’라는 남편과의 갈등이 컸습니다. 지금도 아이들 어린 시절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고, 그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질책받는다는 사실이 서글픕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 위로하고 깨달은 건 일하는 여성이 엄마 역할까지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엄마로서도, 변호사로서도 완벽하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둘 다 잘할 수 없습니다. 사회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가족 또는 제3자의 지원이 필수입니다.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않았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 부담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향후 한국여성변호사회의 목표와 비전은 무엇입니까? 또 회장님 개인의 비전도 듣고 싶습니다.
여성변호사회의 기본적인 활동 지향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입니다. 1만 2천여 명 여성 변호사가 가진 공감 능력과 성실함, 책임감을 발휘해 우리 사회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후배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13년간의 개인파산관재인 경험을 담은 <두 번째 기회를 위한 변론>을 통해 알렸듯 누구에게나 다시 일어날 기회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또 "기회가 오면 거절하지 말라"라는 제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며, 더 많은 여성 변호사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도록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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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 변호사는 <두 번째 기회를 위한 변론>을 출간했다.[사진=본인] |
- 최근 <두 번째 기회를 위한 변론>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꼭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평균의 잣대로만 사람을 평가하면 출발선의 차이와 구조적 취약을 놓치게 됩니다. 많은 파산채무자 뒤에는 무책임이 아니라 가난, 교육 기회의 부재, 홀로 감당해야 했던 양육의 짐,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실직 같은 요인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들은 결국 파산이라는 절벽에 내몰리게 됐습니다.
사회는 이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이해와 회복의 틀을 제공해야 합니다. 개인의 파산은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고, 때로는 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국가의 안전망은 필수이며, 채무조정과 파산 제도는 실패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돕는 최소한의 ‘사다리’인 셈입니다. 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를 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두 번째 기회를 위한 변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요?
여러 사례가 있지만, 두 분이 특히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첫 번째는 ‘삼모작 인생’을 사신 정민석(가명)님입니다. 여러 차례 새로운 도전을 했으나 변수가 겹치며 결국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분의 삶을 통해 “성실과 노력이 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라는 현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두 번째는 60대 초반 여성 화가 정나래(가명)님입니다.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 속에 빚이 쌓이고 건강마저 무너진 상태에서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첫 면담 때는 고개조차 들지 못했지만, 면책 결정을 받던 날에는 “이제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꼭 재기해서 연락드리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년 뒤 실제로 건강을 회복하고 창작을 재개해 특별초대 작가로 활동 중이라는 문자를 보내오셨습니다. 이 사례는 ‘두 번째 기회’가 구체적인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고, 제게도 큰 힘이 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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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숙 서울여성가족재단 이사장과 이금재 맘스커리어 대표와 함께[사진=맘스커리어] |
- 마지막으로 맘스커리어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하는 엄마로서 많은 워킹맘의 고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완벽한 엄마, 완벽한 직장인이 되려고 애쓰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저도 역시 같은 고민을 하며 그런 시절을 겪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가 일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것 자체가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실수하더라도 우선순위를 바꿔가면서도 계속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같은 길을 걷는 동료가 있고, 여러분을 응원하는 선배가 있습니다. 서로 도와가며 함께 성장해 나갑시다. 워킹맘들의 삶이 따뜻하고 든든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든 워킹맘을 응원합니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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