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 2] 유니레버下 “왜 비즈니스 모델이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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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가 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보고서 작성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진정한 지속가능 경영은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일입니다. 9월부터는 앞선 에 이어 구체적인 기업사례를 심층 소개하는 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ESG를 성장 동력으로 활용한 글로벌 선도 기업 성공과 실패 경험을 균형 있게 살펴보고, 한국 기업이 참고할 수 있는 실질적 교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기업 사례 리포트 유니레버上편에서는 ‘지속가능 생활 계획(USLP)’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비결을 살펴봤다. 유니레버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별도 부서의 업무가 아닌 모든 브랜드와 사업 DNA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품을 파는 회사’에서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회사’로 변신했을까.

2002년 인도에서 시작한 라이프보이 비누 캠페인은 유니레버 ESG 경영의 백미다. 당시 인도는 설사로 10초마다 어린이 1명이 사망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이 1000명당 90명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기존 마케팅 방식이라면 ‘항균 효과가 뛰어난 비누’라는 기능을 강조했겠다. 하지만 유니레버는 접근법을 완전히 바꿨다. 단순히 비누를 파는 대신 ‘손 씻기 교육’을 통해 생명을 구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광선 세균 데모 키트를 활용해 비누로 씻지 않은 손의 세균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건강 교육을 실시했다. 마을 단위로 손 씻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학교와 병원에서 지속적인 캠페인을 펼쳤다. 현지 문화에 맞춰 힌두교 종교 지도자와 협력해 종교적 맥락에서 청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결과는 놀라웠다. 2019년까지 10억 명에게 손 씻기 중요성을 알렸고, 라이프보이 매출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연평균 9.6% 성장했다. 실제로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아동 설사병 발생률이 현저히 감소했다. 비즈니스 성과와 사회적 가치 창출이 동시에 달성했다.

도브(Dove) 브랜드의 ‘진정한 아름다움(Real Beauty)’ 캠페인은 화장품 업계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2004년 시작된 이 캠페인은 기존 화장품 업계의 '완벽한 미의 기준'에 도전하며 다양한 외모와 체형의 여성을 모델로 기용했다.

하지만 단순히 광고 모델만 바꾼 게 아니었다. 유니레버는 제품 개발부터 마케팅, 유통까지 전 과정을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가치 중심으로 재설계했다. 도브는 자존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전 세계 젊은 여성의 자존감 향상을 응원했다. 2004년부터 2020년까지 82개국에서 2900만 명 젊은이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13년 도브 리얼 뷰티 스케치 영상은 캠페인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법정 화가가 여성의 자기 묘사와 타인의 묘사를 바탕으로 각각 그림을 그려 비교하게 했다. 여성이 자신을 실제보다 못하게 인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영상은 출시 한 달 만에 1억 1,400만 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칸 광고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결과적으로 도브는 브랜드 가치 40억 달러를 달성하며 글로벌 퍼스널케어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2017년 기준으로 도브는 연간 40억 유로 매출을 기록했다.

이같은 유니레버 성공 비결은 ESG를 특정 브랜드나 캠페인에만 적용한 게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전반에 체계적으로 통합했다는 점이다.

핵심 자원 측면에서 유니레버는 2030년까지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체계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2020년 기준으로 유니레버 공장 78%가 재생에너지로 운영되고 있다. 이를 통해 연간 수백만 달러 운영비를 절감하고 있다.

베트남 꾸치공장은 2019년 태양광 패널 설치를 통해 전력 수요의 40%를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초기 투자비 250만 달러를 투입했지만, 연간 전력비 절감액이 60만 달러에 달해 4년 만에 투자금을 회수했다. 더 나아가 이 공장은 2021년 탄소 중립을 달성했으며, 현재 다른 공장들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 있다.

공급망 관리에서도 혁신을 보였다. 헬만스 마요네즈는 2025년까지 케이지 프리 달걀로 100% 전환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유럽에서는 2020년 이미 이 목표를 달성했고, 북미 지역에서도 85% 이상 진행됐다. 초기에는 원료비 상승으로 수익성에 부담이 있었지만, 브랜드 프리미엄 증가와 유통업체 우대 정책으로 중장기적으로는 더 큰 수익을 창출했다.

유니레버의 지난 10년 여정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성공과 실패가 공존한다.

재무적인 성과로는 2018년 기준 목적 중심의 지속가능 브랜드가 나머지 사업보다 69% 빠르게 성장했고, 전체 성장의 75%를 담당했다. 폴먼 재임 기간 동안 총 주주수익률 290%를 달성했고, 매출도 400억 유로에서 510억 유로로 27.5%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투자자 구성 변화다. 분기별 실적 발표 중단 이후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 비중은 15%에서 5% 미만으로 줄어든 반면, 평균 7년 이상 장기 보유하는 투자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이는 주가 변동성을 줄이고 장기 전략 추진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성공적이진 않다. 유니레버는 여성 생활 개선과 기회 확대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그 실질적 효과를 측정하는 일은 극히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해 지속가능한 조달 목표 달성도 예상보다 까다로웠다.

더 큰 도전은 경영진 교체 후 나타났다. 2024년 새로운 CEO 헤인 샤우트 취임 후에는 일부 목표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약속했던 2025년까지 신규 플라스틱 사용 50% 절감은 2026년까지 30%, 2028년까지 40% 절감으로 후퇴됐다. 외부에서는 주주 이익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런 후퇴는 ESG 경영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아무리 훌륭한 ESG 전략이라도 경영진의 일관된 의지와 이사회의 지속적인 지지가 없으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단기 실적 압박이 커질 때 ESG 투자가 가장 먼저 축소될 위험이 있다는 현실적 한계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은 이러한 유니레버 사례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첫째, ESG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ESG를 덧붙이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가치제안 자체를 사회 문제 해결과 연결하여 재정의해야 한다.

둘째, 장기적 관점이 필수다. 유니레버처럼 분기별 실적 중심에서 벗어나 장기적 가치 창출에 대한 주주 및 이사회의 이해와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ESG 통합이 단기적 비용 증가를 수반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셋째, 완벽함보다는 지속적인 개선이 중요하다. 유니레버도 목표의 20%는 달성하지 못했고 일부 목표는 후퇴시켰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개선해 온 점이 오늘날의 성과로 이어졌다.

넷째, 측정 가능한 목표 설정과 체계적인 실행이 필요하다. 라이프보이의 손 씻기 교육처럼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사회적 임팩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브랜드 전략과 연결해야 한다.

한국 기업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이 이미 81%를 넘어선 상황에서 이제는 보고를 넘어 실행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다. 유니레버처럼 ESG를 비즈니스 모델 전반에 체계적으로 통합한 기업이 미래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것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개선해나가기 그게 진정한 ESG 경영의 출발점이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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