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지역 공공의료 인력난 해법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한의협은 부족한 공공의료 인력 충원 방안으로 한의사에게 일정기간 교육을 거쳐 의사 면허 취득 기회를 부여하자고 제안했다. 의협은 이에 대해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6일 의료업계에 따르면 정부 의대 정원 확대 정책과 맞물리면서 향후 공공의료 인력 충원 방안을 둘러싼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의협은 최근 성명에서 "전공의 복귀로 대형병원 의료 공백은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지만, 농어촌과 일차 의료 현장은 여전히 인력난과 접근성 부족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8월 기준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 현황도 제시했다. 외과는 인구 1000명당 0.13명, 신경외과 0.06명, 흉부외과 0.02명에 불과했으며, 산부인과 역시 여성 인구 1000명당 0.24명 수준에 그쳤다.
한의협은 "의료 취약지에서 전문 인력 부족과 이탈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한의사는 이미 국가 면허를 보유한 의료인으로 만성질환 관리, 재활, 통증치료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험을 쌓아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존 의료 인프라와 협력한다면 즉시 공공의료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준비된 인력"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료 사관학교를 신설해 신규 의사를 양성하려면 최소 14년이 필요하다"며 "반면 한의사는 1~2년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국시를 통과하면 응급의학과, 소아과, 외과 등 필수과목 전문의 수련을 거쳐 곧바로 공공의료에 투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놓고 의협은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의협은 "겉보기에 빠른 해법처럼 보이지만 이는 의료의 본질을 훼손하는 무모한 발상"이라며 "과학적 근거 위에 세워진 현대의학을 1~2년 단기 교육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환자 안전을 무시한 허황된 논리"라고 지적했다.
의사 국가시험 제도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 의대에서 최소 6년간 교육과 임상실습을 마쳐야 국시 응시 자격이 주어지고, 이후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야 전문성을 완성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필수의료 인력난의 원인 역시 구조적 문제라고 짚었다. 외과·산부인과 등 기피과 현상은 낮은 보상과 과중한 업무, 높은 법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 단순한 인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의협은 "한의사 투입은 본질을 가리는 눈속임에 불과하다"며 "의학교육제도 단일화와 한의대 폐지를 통한 의료일원화가 근본적 대책"이라며 강경한 입장도 내놨다.
정부 고민도 싶어지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와 지역의사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단기간 효과를 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한의협의 ‘즉시 활용’ 논리는 일부 정치권과 지역사회에서 일정 부분 호응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환자 안전을 우려하는 여론과 의협의 반발을 감안하면 정책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적 파장도 불가피하다. 만약 한의사의 의사 면허 전환이 현실화된다면 공공의료 인력 충원 효과는 있겠지만, 의료 서비스의 질과 신뢰도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응급의학과·외과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 과목에 단기 교육 인력이 투입될 경우 의료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의협 주장대로 한의대 축소나 의료일원화가 추진될 경우, 한의학의 독립성과 전통 의료 산업 기반이 위축될 수 있다. 현재 한의학은 건강보험 급여와 한방병원 네트워크를 통해 연간 수조원 규모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 제도 개편은 곧 산업 재편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공공의료 인력난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의사에게 의사 면허를 부여하는 문제는 제도적·안전적 파급력이 크다"며 "성급한 결정보다는 충분한 논의와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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