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신라·신세계면세점과 인천국제공항공사 간 '여객수 연동형 임대료'를 둘러싼 갈등이 장기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공사가 2차 조정기일에 불참하며 협상이 결렬되자 업계에서는 향후 소송전, 매장 철수, 조건 완화 후 재입찰 등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31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이번 협상은 28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조정기일에서 사실상 결렬됐다.
공항공사는 "임대료 인하는 배임 소지가 있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법원이 강제조정안을 제시하더라도 공사가 수용하지 않으면 효력이 제한되는 만큼, 실무적으로 협상은 무산됐다는 평가다.
분쟁의 핵심은 임대료 산정 방식이다. 신라·신세계면세점은 지난 4~5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 이후 업황이 기대만큼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객 1인당 고정 단가'로 산정되는 임대료가 과도한 부담이라며 40% 인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공항공사는 "경쟁입찰로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써낸 금액으로 확정된 만큼 조정은 불가하다"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2차 조정 직전 면세점 측이 인하율을 40%에서 30~35%로 낮춘 의견서를 제출하며 절충점을 모색했지만, 공사는 이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천공항 임대료는 2023년 7월부터 여객수 연동 구조로 전환됐다. 지난 6월 출국객(296만7449명)을 기준으로 신라·신세계가 매달 부담하는 임대료는 각각 34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는 공항 면세점을 실제로 방문하는 이들의 숫자가 아니다.
업계는 두 면세점의 월 매출을 600억~650억원 수준으로 본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임대료로 납부하는 셈이다. 운영기간이 8년이나 남은 장기 계약 특성상 부담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인천공항이 4단계 확장 공사를 마쳐 이용객 증가가 예상된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실적 부진은 뚜렷하다. 외국인 관광객 수는 팬데믹 이전 수준에 근접했지만, 고환율로 내국인 구매력이 약화됐다. 매출 의존도가 80%에 달했던 중국인 수요는 줄었고, 올리브영·다이소 등 대체 쇼핑 채널이 늘며 객단가가 과거만 못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외국인 1인당 구매액은 지난해 6월 116만3988원에서 올해 84만171원으로 27.1% 감소했다.
면세점 관계자는 "매달 수십억원, 연간 수백억원 적자는 감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공항 측 논리도 분명하다. 현재 고액으로 지목되는 임대료는 2023년 4기 면세점 사업자 입찰 당시 신라·신세계가 직접 제시한 금액이다. 신라면세점(DF1)과 신세계면세점(DF2)은 각각 8987원, 9020원을 써냈는데, 이는 인천공항공사가 제시한 최저수용액(DF1 5346원, DF2 5617원)보다 각각 68%, 61%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공격적 베팅으로 두 회사는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과 롯데면세점을 제치고 사업권을 따냈다.
공항공사는 "해당 금액을 써냈을 때는 경영 여건이 악화되더라도 감당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라며 "향후에도 고액으로 낙찰받은 사업자가 ‘깎아 달라’고 요구하면 공공기관의 공정성이 훼손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결과적으로 신라·신세계가 과도하게 베팅했음을 드러낸 셈"이라며 "실제 낙찰 당시 탈락 업체와의 입찰가 격차가 40% 이상이었고, 40% 감면 요구는 자신들이 그만큼 높게 써냈다는 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항공사가 공정성을 이유로 조정을 거부하는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대면세점은 DF5 구역을 여객당 1109원으로 따냈는데, 최저수용액(1056원) 대비 약 5% 높은 수준이다. 그 결과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한 2935억원을 기록하며 안정세를 보였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당시 입찰가는 2019년 여객수와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당시 임대료보다 20% 낮은 금액"이라며 "임대료 인하 요구는 중국 관광객 감소, 고환율, 온라인 면세 주류 판매 허용 등으로 2019년 대비 객단가가 40% 낮아진 상황에서 시장 정상화까지 한시적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 변화로 인한 어려움은 아시아 전역이 동일하다"며 "인천공항이 임대료 체계를 벤치마킹한 싱가포르 창이공항(약 35%)을 비롯해 베이징·상하이(약 75%) 등 주요 공항들도 임대료 인하로 업계를 지원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렇자 철수 카드도 거론된다. 신라·신세계가 사업을 접을 경우 각각 약 1900억원의 위약금이 발생한다. 단기적으로 손실이 크지만, 매달 수십억 원대 적자를 누적하는 것보다 '확정 손실'로 정리하고 새 전략을 모색하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철수가 현실화되면 차기 후보로 롯데·현대면세점·중국 CDFG(China Duty Free Group) 등이 거론된다.
이에 대해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재입찰 여부는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신라·신세계의 향후 행보를 지켜본 뒤 시장 상황과 공고 조건을 보고 참여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면세점 관계자도 "입찰 여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만 답했다.
만약 차기 입찰 참여자가 없을 경우 인천공항공사는 조건을 낮춰 재입찰에 나설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0년 일부 면세구역이 세 차례 유찰되자 예정가격을 약 30% 인하해 재입찰을 진행한 전례가 있다. 면세 매출이 공항 수익의 30~40%를 차지하는 만큼 장기간 공실을 방치하기 어려워, 어떤 형태로든 새 사업자를 유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유재산법상 입찰이 세 차례 이상 유찰되면 수의계약이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공항공사가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조건을 낮춰 재입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임대료 수준만 합리적으로 조정된다면 인천공항 면세점은 여전히 매력적인 매장이어서 굳이 참여를 피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