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 김혜인] “둘째 낳을 생각 없어요?”
“네, 없어요.”
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자 이웃집 엄마가 폭소했다.
그는 예전에 “아이가 세 살쯤 되면 이제 좀 살 만하다고 느끼면서 둘째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건 첫 아이를 비교적 키울 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큰 탈 없이 잘 컸든지, 양육을 분담할 이가 많든지, 경제적으로 여유롭든지, 체력이 좋든지.
나는 매일 딱 하루 만큼만 간신히 버틸 뿐이었다. 아이가 세 살이 되어도 여전히 살 만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맘때 둘째 생각이 든다는 말은 동의한다. 세 살 아이는 정말 예쁘다.
우리 부부가 “둘째 낳을까?”라는 농담을 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서로 장난인 줄 뻔히 알면서 하는 말이지만 약간의 진심도 없다면 거짓말이다. 아이가 너무 예뻐서, 어설프게 깜찍한 아기 시절이 지나버린 게 아쉬워서, 이렇게 귀여운 시절이 계속 흘러가는 게 안타까워서, 각자 속으로 상상한다. 둘째가 있다면 어떨까?
아이는 한 명 있을 때보다 둘, 셋이 있을 때 훨씬 예쁘다. 20대에는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인이 낳은 쌍둥이를 보면서 느꼈다. 올망졸망하게 있는 모습이 몇 배는 더 사랑스럽다는 걸.
“우리 아이 같은 녀석이 옆에 한 명 더 있는 걸 그려 봐.” 내가 이렇게 말하자 남편은 빙그레 웃었다.
첫 아이는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는데, 일단 아이가 생기고 보니 둘째 아이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더 쉽게 들었다.
적극적으로 둘째를 권한 이도 많았다. 한동안 죽도록 힘들지만, 아이들이 좀 크고 나면 저희끼리 놀아서 부모에게 여유가 생긴다고. 특히 첫째가 예민한 아이면 둘째 성격이 무던하다든가, 둘째는 뭐든지 빠르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형제가 있다면 발달장애 아이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격려하는 이도 있다.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싸우고 화해하고 경쟁하고 배려하며 많은 걸 배우겠지.
나아가 우리 부부가 세상을 떠나면 이 아이를 누가 돌봐줄까, 친구를 사귀기 어려울 텐데 형제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솔직히 그런 고민도 했다. 그러나 세상 어느 부모가 그런 일을 맡기려고 아이를 더 낳겠는가.
게다가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린이병원 입원 병동에서는 온갖 사연으로 떠들다가도 갑자기 침묵이 흐르곤 한다.
“몇 호실 첫째가 자폐인데 둘째는 뇌병변으로 누워만 있대.” 그 사연을 들었을 때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떨구었다.
한숨만 들리던 침묵 속에서 누군가 혼잣말로 읊조렸다. “너무, 가혹하다.” 그 말의 주어는, 대상은 누구일까?
만일 둘째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아프다면 자책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아이를 자폐성 장애로 등록하기 위해 장애등록심사 서류를 제출했다. 내 손으로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고 신청하는 비참함과 혹시 장애 판정이 나오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마음을 안고.
둘째를 단념한 건 결코 가볍게 내린 결정이 아니다.
아이가 종종 유모차에 누워 있는 다른 집 아기에게 관심을 보인다. 아이에게 동생이 있다면 어떨까 궁금하다. 오빠 혹은 형으로서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아주 대견하고 귀엽겠지. 그 모습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늘 마음에 남아 쉽게 가시지 않을 듯하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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