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연상호 감독이 새로운 제작방식과 태초의 '연니버스'로 극장가에 출격한다.
2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얼굴'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행사에는 연상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이 참석했다. 진행은 방송인 재재가 맡았다.
'얼굴'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곽해효/박정민)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연상호 감독이 2018년 자신이 쓰고 그렸던 만화 '얼굴'의 실사 독립영화로 돌아온다.
이날 연상호 감독은 "'얼굴'이라는 작품을 만화라는 매체로 표현했는데 영상화 기회를 계속 노리고 있다. '얼굴'이란 작품이 엔딩에 이르러서 주는 감정 같은 게 있다. 이쪽 일을 오래 작업하다 보면 그 감정이 너무 귀하다"며 "이런 감정을 마지막에 던질 수 있는 작품을 나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 감정을 관객들과 느껴보고 싶다는 게 컸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어 "그 감정이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걸 설명하기 힘들었다. 귀한 감정이고 포인트인데, 그걸 프레젠테이션 하는 게 상당히 어려운 상태일 것 같았다. 요즘 OTT, 극장, 유튜브 콘텐츠도 있고 매체가 많지 않나"며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각화를 이루지 못하면 계속해서 만들 수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를 만드는 방식도 다각화를 하기 위해서,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제작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박정민이 시각장애를 가진 전각 장인 '임영규'의 젊은 시절과 그의 아들 '임동환'으로 첫 1인 2역에 도전한다. 시각장애의 한계를 딛고 도장을 파며 성실히 살아가는 '젊은 임영규'와 40년 만에 백골 사체로 돌아온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아들 '임동환'으로 분한다.
생애 첫 1인 2역 연기에 대해 박정민은 "재밌었다. 한 가지 좀 하면서 '아, 이런 부분이 있구나' 느꼈던 건 서로가 서로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게 있더라. 젊은 임영규를 연기했기 때문에 임동환으로서 느끼는 감정들이 깊어졌다"며 "후반부로 갈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연기가 되는 느낌을 받는 게 생소했다. 그동안은 느껴보지 못했던 형태의 감정이었다"고 말했다.
연 감독의 '짜증이 깊어졌다'라는 평에 대해서는 "'짜증 연기'라는 것이 오피셜 하게 나온 게 감독님의 전작 '지옥'을 통해서였다. 많은 분들이 그렇다고 하셔서 '프레임이 씌워졌다' 싶었다"며 "그런데 (연상호 감독이) 또 '짜증을 어떻게 그렇게 잘 내냐', '짜증에 결이 생겼다' 하셔서 다음에 함께할 일이 있다면 절대로 짜증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권해효는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새기며 살아있는 기적이라 불리는 전각 장인 '임영규'로 분한다. '사이비', '반도', '방법: 재차의'와 시리즈 '기생수 : 더 그레이'까지 연상호 감독과 오랜 호흡을 맞춘 페르소나 권해효의 호흡이 기대를 모은다.
배우 인생 최초의 시각장애인 연기에 그는 "앞을 볼 수 없다는 연기를 위해 렌즈도 껴야 했는데, 실제로 앞이 잘 안 보인다. 그때 느끼는 묘한 편안함이 있었다. 항상 모든 것들의 정보가 많은 부분이 눈 안에서 들어오고, 배우는 그 안에서 다른 배우들의 숨소리조차 자극받고 반응하기 마련"이라며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 의식하지 않는 편안함이 있었다. 작고하신 장인어른이 시각장애인이셨고, 그 모습을 옆에서 봤던 내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라고 설명했다.
연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캐릭터가 임영규였다. 어떻게 보면 임영규는 보이지 않으면서 시각예술을 하는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엄청난 것을 극복해 낸 사람"이라며 "나는 그 인물 자체가 고도성장을 이룩한 한국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근대사를 상징할 수 있는 인물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정영희라는 인물을 두고 처음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정민과 권해효는 '임영규'라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연기하며 부자호흡을 맞춘다. 이에 박정민은 "내가 먼저 임영규를 촬영하고 선배님께서 나중에 그걸 보시고 나의 연기적인 면들을 따서 가져가주셨다. 사실 얼굴이 엄청 닮진 않았다. 그런데 그런 걸 따와서 화면 안에 녹여주셔서 보다 보면 내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권해효 선배님 같은 몇 장면들이 있더라"라고 짚었다.
이어 "선배님께서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다. 평소에 너무 좋아하는 선배님이셔서 같이 연기하고 있으면 넋 놓고 보게 되는 게 있다"며 "내가 영화 때문에 도장 파는 걸 배웠는데 감독님이 '아무리 도장 파봐라. (권해효 같은) 저 장인의 얼굴이 나오냐'라고 농담 삼아서 하셨다. (권해효의) 얼굴이 모니터에서 지나가는데 내가 무릎을 꿇었다"고 존경심을 표했다.

시각장애인 남편 '임영규'와 갓난아이였던 아들 '임동환'이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던 정영희는 신현빈이 연기한다. '정영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40년 만에 백골 사체로 발견된,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의 주인공이다.
신현빈은 "정영희라는 인물이 가진 특수한 상황들이 있다. 그게 영화적인 장치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이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다른 사람의 문제고, 나름대로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했다"며 "전면에 얼굴을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방식의 표현을 많이 해야 했다. 배우들은 표정이나 얼굴을 가장 많이 활용한다. 그 부분을 줄인다면 어떤 부분을 더 사용하고,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하며 접근했다"고 연기 포인트를 짚었다.
연 감독은 "정영희라는 인물이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불편한 정의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 '불편한 정의'를 규정하는가 생각했다"며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방식의 연출이었다. 배우가 얼굴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게 큰데,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손이나 어깨 등으로 표현을 해주셨다. 역설적으로 정영희의 감정 이런 것들이 더 전달되는 느낌이 있다. 신현빈 씨가 잘 표현해 주셨구나 생각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임성재가 '임동환'의 어머니 '정영희'가 일했던 청계천 피복 공장의 평판 좋은 사장 '백주상'으로 분한다. 한지현이 전각 장인 임동환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PD로, 40년 전 정영희의 죽음 뒤의 사연을 임동환과 함께 파헤치는 김수진을 연기한다.
임성재는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직원들 월급도 안 밀리고 따박따박 주고, 또 그 얼굴을 찍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굴곡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귀여운 얼굴만 있지 않고,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그것을 기대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지현은 "악의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보일 수도 있지만, 점점 진신을 보고 정영희에게 공감하는 인물이다. 김수진의 변모한 모습을 구체적이고 인간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했다. 선배님들,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잘 찾아갔다"라고 이야기했다.
'얼굴'은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됐다. 연 감독의 토론토국제영화제 초청은 전작 '사이비', '지옥'에 이어 세 번째다. 연 감독은 "월드프리미어로 선보여 영광스럽고 즐겁고 기대된다. 다만 떨리기도 하는 게 한국인이면 더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걸 북미 관객한테 선보인다는 게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며 "또 한 가지 죄송스러운 건 빨리 많은 분들한테 보여드리고 싶은데 토론토 월드프리미어에 걸려있어서 빨리 보여드리지 못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형화된 영화 제작 방식의 틀에서 벗어난 환경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 왔던 연 감독은 오랜 영화 동료 20여 명과 함께 단 2주의 프리 프로덕션과 13회 차 촬영만으로 '얼굴'을 완성했다. '얼굴'의 제작비는 초저예산인 2억원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연 감독은 "영화가 '너무 후지게 나오면 어떡하지' 싶었다. 규모가 있는 영화를 많이 하다보니 못 미치는 결과물이 나오면 어떡할까 걱정이 들었다. 그 두려움부터 떨쳐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우리 팀과 배우들이 모이면서 없어졌다. 훨씬 더 좋은 방식으로 영화가 완성될 것 같았다. 영화를 하며 한번도 풍요롭게 찍어본 적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역설적이게도 '얼굴'을 가장 풍요롭게 찍었다"고 털어놨다.
또한 최근 한국영화 시장에 대해 "안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한 극장시장에는 변화한 영화들이 존재하지 않겠나. 요즘 아시아 영화들을 다시 보고 있는데, 레전드급 영화들도 어떻게 보면 '얼굴'의 제작방식으로 만들어졌다"며 "한국의 극장이 망가지거나 환자가 됐거나 안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낳을 것이고, 우리는 그 변화를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얼굴'은 오는 9월 1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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