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퇴사 후 무미건조 집콕 일상을 보내던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 분)는 아랫집에 이사 온 선지(임윤아 분)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기괴한 비주얼의 선지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고 청순한 선지와 오싹한 선지 사이에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날부터 선지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 반, 두려움 반 주변을 맴돌던 길구는 그녀의 아버지 장수(성동일 분)에게 이들 가족의 특별한 비밀을 듣게 된다. 바로 선지가 낮에는 유순하고 평범하지만 새벽이 되면 악마가 깨어나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
장수는 길구에게 새벽에만 선지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는 험난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안한다. 길구는 악마 선지의 저주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감독 이상근)는 새벽마다 악마로 깨어나는 선지를 감시하는 기상천외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청년 백수 길구의 영혼 탈탈 털리는 이야기를 담은 악마 들린 코미디 영화다. 2019년 데뷔작 ‘엑시트’로 942만명의 관객을 매료한 이상근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자 ‘엑시트’ 흥행 공신 임윤아와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무해하고 순수하다. 전작에서 순수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좇는 평범한 인물이 고난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그려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이상근 감독은 이번에도 특별한 영웅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인물들, 현실에 땅을 딛고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나아가고 성장하는 모습을 특유의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악마가 깃든 인물’이라는 오싹한 설정에도 러닝타임 내내 따뜻한 미소가 지어지는 이유다.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장면도 꽤 있는데, 과하지 않은 담백한 연출로 더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그중에서도 항상 선지의 곁을 지켰던 아버지 장수, 그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뒷모습을 담담하게 비춘 장면이 꽤 진한 여운을 선사한다.

다만 이러한 무해함은 이 영화의 개성인 동시에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편안하고 따뜻한 매력은 분명 강점이지만, 영화적 재미를 끌어올리기 위한 ‘한 방’은 부족하다. 좀처럼 서사의 온도를 끌어올리지 못한 채 미지근한 상태에서 머무른다. 극적인 긴장감이나 강한 서사적 몰입을 기대한 이들에겐 다소 심심하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겠다.
배우들은 호연을 펼친다. 먼저 선지를 연기한 임윤아는 낮과 밤 전혀 다른 모습의 인물을 다채롭게 소화하며 몰입을 끌어올린다. 특히 센 목소리 톤과 다채로운 표정, 강렬한 웃음소리 등 역대급 변신으로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보여준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도 확인할 수 있다.
안보현도 착하고 듬직한 길구 그 자체로 분해 이 영화만의 순수하고 무해한 매력을 배가하고 성동일과 주현영도 탁월한 코미디 완급 조절로 유쾌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신현수도 인상적이다. 짧은 등장에도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배우들 간의 자연스러운 ‘케미스트리’ 역시 강점이다. 각기 다른 에너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극에 생동감을 더한다.
이상근 감독은 “영화를 볼 때 어떤 각오를 갖고 들어가서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뜻하지 않게 만난 작은 선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이 세상은 마냥 착하거나 좋은 사람들이 잘 살아갈 수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성장하고, 변화하고, 용기를 내는 순간에 희열을 느낀다. 내가 못 했던 걸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연출 의도를 전했다. 러닝타임 113분, 오는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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