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연 칼럼] 실력과 신뢰, 제도와 문화가 만날 때 창업은 길이 된다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2025년 7월9일, 동반성장 컨퍼런스에서 조태권 ㈜화요 회장은 "창업하는 청년과 중소기업은 세계를 배경으로 생각하고,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발언은 얼핏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비전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면에는 국내 시장의 한계와 냉혹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다.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한 발언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술력이나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와 진입하더라도 그 자리에서의 유지가 어려운 상황 등은 여전히 창업가들의 성장을 어렵게 만든다. 

지난 2024년 중소기업중앙회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5년 생존율은 약 30% 내외에 불과하다. 또 상용화된 기술을 대기업이 모방하거나 하청구조로 편입시키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전 칼럼에서도 언급했듯, IMF 외환 위기 이후 30여 년이 지났음에도 대한민국의 재계 순위에는 큰 변화가 없다. 이는 창업 기업이 기존 재벌 체제의 장벽을 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방증한다. 

반면 미국은 테슬라, 구글, 넷플릭스, 엔비디아 등 신생 기업들이 대담한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산업 지형을 바꿔놓았다. 이는 단지 창업가의 역량만이 아니라, 시장의 개방성, 자본의 접근성,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 등 복합적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안정적인 직업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며, 실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존재한다. 정부는 다양한 창업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일회성 공모 위주의 탁상행정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창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첫째,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 창업에 발목을 잡는 과도한 규제, 기술 탈취를 방치하는 미비한 법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균형한 납품 구조 등은 창업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술탈취를 이유로 행정조사와 분쟁조정을 신청한 스타트업의 수는 전년 대비 167% 증가했다. 이 같은 현실은 창의적인 기술 기반 기업이 오히려 국내에서 불리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 실패는 도전의 증거이지 낙인이 아니다. 재도전이 가능한 환경과, 창업가 정신을 존중하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는 청년들의 자존감 회복과 도전의 동기를 높이는 데 핵심적이다. 정부도 실패한 창업가의 신용 회복과 재도전을 지원하는 구조를 보다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대기업과의 '진정한 협력' 구조에 대한 냉철한 접근이 필요하다. 흔히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동반성장을 이야기할 때 '인식의 전환'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이는 현실에서는 구호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의 구조적 우위는 단순히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지배력과 자본력, 그리고 제도적 유리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인식'을 바꾸자는 주장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진정한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자발적 변화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공정한 시장 질서와 거래 관행을 정착시키는 제도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기술 탈취, 납품단가 후려치기, 일방적 계약 변경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강력한 사전적 규제와 사후적 구제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단지 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실질적인 분쟁 해결 수단을 마련하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물론 창업가도 환경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조태권 회장이 언급했듯, 창업가 스스로 세계를 무대로 한 상상력과 실천력을 갖춰야 한다. 국내에만 안주하는 전략은 성장이 아닌 정체를 의미한다.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기술과 데이터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죽을 만큼 노력한다'는 표현이 과격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는 결국 스스로를 증명하겠다는 창업가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일부 창업가들의 제도적 약자라는 위치를 내세워 특혜를 당연시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정당화하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특혜는 요구만 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따라오는 결과물이다. 창업가는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책임과 실력을 통해 사회에 신뢰를 먼저 입증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한국 경제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가와 창업가의 상생, 그리고 대기업과 창업가 사이의 동반성장이 필요하다. 창업가 개인의 분투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창업 문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책임 있는 태도 변화와 함께, 제도적 개혁, 공정한 시장 질서, 창업 실패를 포용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 구조적 전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창업가는 실력과 신뢰로 증명하고, 국가는 제도와 문화로 응답할 때, 비로소 한국에서도 그 길이 열릴 것이다.

이다연 (사)동반성장연구소 이사 / (주)더블유시즌 대표이사 / 퍼듀대학교(Purdue University) 농업경제학 전공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MBA) 



Copyright ⓒ 프라임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이다연 칼럼] 실력과 신뢰, 제도와 문화가 만날 때 창업은 길이 된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