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77] 벌벌 떨어도 돼요

마이데일리

[교사 김혜인] “아이 하나 키우면서 왜 이렇게 벌벌 떠나 싶으시죠? 이렇게 되더라고요.”

몇 년 전, 한 학생의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 내가 아이 걱정에 벌벌 떨고 있기 때문이리라.

때는 몇 년 전 1학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한 학생의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왔다.

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과연 걱정거리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성격이 밝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며 교우 관계가 원만하고 얼굴마저 예쁘장한 학생의 어머니였다. 그 학생이 누구를 닮았는지 한눈에 알아 봤을 만큼 서구적이고 화려한 미인형이었다.

하지만 그는 태도가 무척 조심스럽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학교에 온 이유는 아이 일을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학생 아버지가 직장에서 해외 발령으로 1년 동안 외국에 나가게 되었는데, 아이도 함께 다녀와도 괜찮을지 의견을 물었다. 청소년기 중 1년을 외국에서 보내는 게 도움이 될지 고민했다.

그러면서 한 말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벌벌 떨고 있는 게 선생님 눈에 우스워 보일지도 모른다고.

당시 나는 아이를 낳기 전이었지만, 학생 어머니가 괜한 노파심으로 쩔쩔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아이를 누구보다 가장 사랑하는 이는 당연히 엄마이리라. 새로운 길을 앞에 두고 그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염려하는 마음은 당연하다. 아이가 잘 적응할까? 잘 해낼 수 있을까?

다만 내가 바라본 그 학생은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영리하고 단단한 아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어머니 걱정과 달리 그 학생은 외국 학교에도 아주 잘 적응하고, 1년 동안 많이 성장하며 더 넓은 안목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아무나 쉽게 얻을 수 없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그는 내 대답을 듣자,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사라진 듯 표정이 아주 밝아졌다. 아이는 1학기를 마치고 학교를 자퇴했다. 1년 동안 외국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했다.

그 학생은 해외에서도 내게 연락을 해왔다.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조잘거리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외국 학교에서 학력을 인정받았으나 1년 뒤 귀국해서는 자퇴한 학년으로 재입학했다. 다시 돌아온 그를 보고 모든 교사가 이전보다 크고 넓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다. 친구들보다 1년 늦게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그의 삶은 아무것도 뒤지지 않았다.

복직을 앞두고 나는 벌벌 떨고 있다. 내가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이 둘을 다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는 좀 다르다.

나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아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매일 울고 분노발작이 일어나거나 밥을 안 먹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내 아이를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안다고, 내 아이 울음은 누구보다 내가 잘 달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아닐 수도 있다. 그 학생 어머니가 미처 보지 못한 것처럼, 내 아이도 아무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영리하고 단단한지도 모른다.

출근하러 현관을 나서면 아이는 울겠지. 나는 환한 미소와 밝은 목소리로 아이에게 인사하고 나오리라 다짐한다. 비록 마음은 벌벌 떨지라도, 새로운 길 앞에 서겠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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