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로 온 나라가 숨을 헐떡이고 있다. 지난달 온열 질환자가 2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10명에 달했다. 기상청은 앞으로 기온이 38도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으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극한 기후와 마주하고 있다.
뜨거운 날씨는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우리 경제 근간을 흔들고 있다. 7월 나흘간 폭우로 전국 농경지 2만4000ha가 침수됐다. 연이은 폭염으로 상춧잎이 녹아내리며 채소값이 치솟았다. 닭과 돼지의 폐사가 급증해 육류와 계란 가격도 불안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전국 가계의 식료품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바다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수온 상승으로 광어와 우럭 같은 양식 어류가 대량 폐사하면서 어업계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광어 도매가격은 전년 대비 14%, 우럭은 41.8%나 뛰었다. 한때 특정 시기에만 나타나던 ‘기후플레이션’이 이제는 우리 경제의 상시적 변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전 세계가 비슷한 상황이다. 프랑스는 지난달 최고 수준의 적색경보가 발생했고, 독일에서는 200건이 넘는 기상 경고가 내려졌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폭염일 수는 현재 연간 10.1일에서 21세기 후반 35.5일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런 극한 기후는 농수산물을 넘어 산업 전반에 광범위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 기후변화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농업 분야는 배추, 상추, 수박 등 주요 농산물 가격이 30~40% 급등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이 60%에 달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극한 기후의 빈도와 강도 증가에 기존 보험 시스템이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해양 생태계 변화와 직결되는 어업 분야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해수 온도 변화로 어종 분포가 급격히 바뀌고, 적조와 한파가 예측하기 어려운 패턴으로 반복되면서 양식업계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야외 활동이 집중되는 건설업과 물류업에서도 폭염으로 인한 작업 중단이 빈번해지면서 공기 지연과 인건비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피해 발생 후 복구하는 사후 대응 방식에 의존해 왔다. 정부 재난지원금이나 기존 농업보험도 실제 피해를 조사하고 확인한 후 보상하는 구조다. 하지만 기후재해 빈도와 강도가 급증하면서 이런 접근법의 한계가 분명해졌다.
현재 농작물재해보험은 전문가의 현장 조사를 통한 복잡한 손해 사정 과정을 거쳐야 하고, 보상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농업인들이 가장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재해 직후 시기에 신속한 지원을 받기 어렵다. 특히 야외 근로자들은 제도적 보호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어, 폭염으로 작업을 중단해도 소득 보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대안이 바로 ‘지수형 기후보험’이다. 지수형 보험이란 실제 피해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사전에 설정된 객관적 기상 지수(온도, 강수량, 풍속 등)가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보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의 일 최고기온이 연속 3일간 37도를 넘거나, 월 강수량이 평년의 50% 이하로 떨어질 경우 미리 약정된 금액이 즉시 지급되는 구조다.
기존 보험과 가장 큰 차이점은 복잡한 손해 조사나 피해 입증 과정이 불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상청의 공식 기상 관측 데이터만 확인되면 보험금 지급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마치 주식 지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자동 매매가 실행되는 것처럼, 기후 지수가 설정된 임계점에 도달하면 보상이 작동하는 원리다.
기후보험의 가입 주체는 주로 농업인과 어업인이며, 개인이 직접 가입하거나 지자체가 지역 농어업인을 대상으로 단체 가입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야외 근로자의 경우는 지자체나 건설회사 등이 단체보험 형태로 가입하여 소속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보험료는 가입자가 일정 비율을 부담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상당 부분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설계되고 있다.
이런 접근법의 핵심 장점은 신속성과 객관성에 있다. 전문가의 판단이나 복잡한 절차 없이 기상청의 객관적 기상 데이터만으로 보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다. 유럽에서는 이미 독일과 프랑스가 강수량, 기온 등 객관적 지표를 활용해 농업인에게 신속한 보상을 제공하고 있으며, 행정 절차가 간소화되고 예측가능해서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6년부터 지수형 기후보험 시범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환경부가 주도하는 기후보험 태스크포스에서 구체적인 상품 설계와 운영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폭염으로 작업이 중단된 야외 근로자들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방안을 우선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지역별 기후 특성을 반영한 정밀한 기준 설정과 정부-지자체-민간의 유기적 협력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현재 환경부, 행정안전부, 복지부로 분산된 기후 대응을 통합적으로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이 중요하다.
기후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는 단순한 복지 정책을 넘어 국가 경제 안정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투자다. 사후 복구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을 고려할 때, 사전 예방을 위한 기후보험 투자는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도 합리적 선택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는 이제 우리 시대의 가장 근본적 도전이 되었다. 연일 계속되는 기록적 더위는 기후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후 복구에만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예방과 적응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기후보험은 그런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 농업인과 어업인, 야외 근로자들이 기후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 없이 본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인프라이자,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토대가 돼야 한다.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 강화와 보험료 지원 확대를 통해 실질적 혜택을 제공하고,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를 사회 전체의 공동 과제로 인식하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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